[10면] 강물은 흐르게 하고 산은 이어져야 한다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끈기와 뚝심, 장인다운 작가, 끝없는 실험정신. 이는 1993년부터 진천에 터를 잡고 한국 판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는 목판화가 김준권(64) 화백을 일컫는 수식어다. 화단에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으로 다시 큰 조명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쓰는 장면 뒤로 그의 작품 '산운(山韻)-0901'이 걸렸기 때문이다. 수묵의 깊은 색감으로 표현한 백두대간의 모습은 역사적인 두 정상의 만남을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겨울 볕이 봄 햇살처럼 반짝이던 지난 주말, 진천 백곡면 사송 2길 66-1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한국 목판문화 연구소'를 찾았다.

끈기와 뚝심, 끝없는 실험정신을 말해주는 김준권 화백의 진천 백곡면 '한국 목판문화 연구소'. / 송창희
끈기와 뚝심, 끝없는 실험정신을 말해주는 김준권 화백의 진천 백곡면 '한국 목판문화 연구소'. / 송창희


# 목판 종주국인 '전통 목판 복원'에 사명감

장식장에 칸칸이 넣어져 있는 나무판과 조각도,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도구들이 벽면 가득 진열돼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마치 목공소 같다. 작업실에 놓여있는 책상마다에는 작가의 능숙한 칼질이 오간 미완의 작품들이 놓여 있고, 나무판에서 갓 떨어져 나온 듯한 나뭇밥에서는 작가의 온기가 느껴진다.

나무판에 수천 번, 수만 번의 칼질로 완성해 내는 그의 작업은 노동에 가깝다. 그의 목판화는 작품에 따라 수십 개의 목판을 중첩적으로 찍어 함축적이며 서정적인 그만의 작품을 완성해 낸다. 엄청난 노동력과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모든 과정이 정교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주목해 온 것은 우리의 산과 들, 강, 바다 그리고 사람들이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물결 속에서 목판화를 시작한 김 화백은 90년대 초 해인사에서 목판화를 접한 뒤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판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적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목판 종주국인 우리의 전통 목판 복원을 위해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목판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 품 안의 크기를 벗어나지 않던 목판화의 대형화를 시도했으며, 무채색이 기본이었던 목판화에 다양한 색채를 부여했다. 대량 복제라는 판화의 기본 기능을 넘어 일반 회화가 갖는 목판화의 조형미를 김준권 식의 치열함으로 완성해 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용어가 '수묵 목판화'다.

 

김준권 작 '백곡의 겨울 2013'. 백곡저수지는 김 화백이 수시로 찾는 단골산책코스다.
김준권 작 '백곡의 겨울 2013'. 백곡저수지는 김 화백이 수시로 찾는 단골산책코스다.

# 48개의 판을 겹쳐 찍어 완성한 대작 '산운'

김 화백은 전국의 산을 오르고, 들판을 누비며 풍경을 스케치해 작업한다. 백두대간 종주는 물론 그가 살고 있는 진천의 주봉인 만뢰산을 포함한 한남금북정맥을 수차례 올랐다. 작업실 근처의 백곡저수지는 그의 단골 산책코스다.

몇 년 전에는 중국 접경지역을 방문, 북한의 산과 들을 화폭에 담기 위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답사했다.

"일반인들은 일을 오래 하면 할수록 능숙해 지지만 작가는 손에 힘이 있을 때까지만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한거죠. 비록 중국 땅에서 바라본 북한지역이지만 작품으로나마 연결해 보고 싶은 거예요. 강물은 흐르게 하고 산은 이어져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죠."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려 큰 화제가 된 김준권 화백의 '산운(山韻)-0901'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려 큰 화제가 된 김준권 화백의 '산운(山韻)-0901'

화제작 '산운(山韻)-0901'은 그런 희망을 담아 2009년 48개의 판을 겹쳐 찍어 완성한 대작이다. 작품 시작에서 완성까지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또 북한 답사 후 압록강 자작나무 원시림을 표현한 2017년 작품 '자작나무 아래'에서는 우리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림사업을 통한 일자 수직의 자작나무 숲이 아닌 잡목들과 함께 자유분방하게 퍼져있는 북한의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김준권 화백의 희망사항은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포장된 채 쌓여있는 작품들을 걸 수 있는 갤러리를 갖는 것이다. 사진은 작업실 2층에 포장된 채 빼곡이 놓여 있는 작품들. / 송창희
김준권 화백의 희망사항은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포장된 채 쌓여있는 작품들을 걸 수 있는 갤러리를 갖는 것이다. 사진은 작업실 2층에 포장된 채 빼곡이 놓여 있는 작품들. / 송창희

# 최근 진천 작업실 구경 오는 사람들 많아져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린 그의 작품이 여러 매스컴을 타면서 최근에는 그의 진천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는 그런 유명세가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대접이 달라졌구나'하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은 작업실이 비좁아 대부분의 작품들이 포장된 채 있는 것이다. 작은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 2층에는 유명세를 탄 '산운(山韻)'과 몇 점의 대표작품만이 전시되어 있다.

"백화점에 가도 매대에 누워있는 옷들이 있고, 마네킹이 입어 디자인과 질감을 다 보여있는 옷이 있잖아요. 봉인된 채 쌓여있는 제 작품들을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처럼 온전히 펼쳐 보여줄 수 있는 갤러리를 갖는 것이 소망입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거죠."
 

김준권 화백의 희망사항은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포장된 채 쌓여있는 작품들을 걸 수 있는 갤러리를 갖는 것이다. 사진은 작업실 2층에 포장된 채 빼곡이 놓여 있는 작품들. / 송창희
김준권 화백의 희망사항은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포장된 채 쌓여있는 작품들을 걸 수 있는 갤러리를 갖는 것이다. 사진은 작업실 2층에 포장된 채 빼곡이 놓여 있는 작품들. / 송창희

# 시민들과 목판화 저변확대 프로젝트 진행도

지난해에는 건강도 조금 안 좋았고, 80년대 자신을 불태웠던 뜨거운 행동본능으로 '광화문미술행동' 대표를 맡아 서울을 오가느라 작품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올해는 지난해에 스케치해 놓은 작품들을 완성하는 것이 우선과제이자 새해 계획이다.

또 3년 전부터는 한국목판문화원을 만들어 판화의 저변확대를 위한 '목판대학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현대목판화가 지향해야 할 내용과 형식, 소통구조, 매체개념 전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동료 작가들과, 또 일반 시민들과 실행하고 있다.

김 화백이 제2의 고향으로 정착한 진천에는 2010년 전국 유일의 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이 들어섰고, 그가 큰 역할을 했다. 진천은 이제 한국판화계의 중요한 터가 됐다. 이렇듯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며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고, 널리 이름을 날리는 경사를 맞은 걸 보면 그에게도 '생거진천'이란 옛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 '뚝심의 화가 김준권'은 그렇게 진천에서 타고난 실험정신과 끈기로 '자신만의 신화'를 쓰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새해 인사 카드
새해 인사 카드

목판화가 김준권 화백 약력

*1956년 전남 영암 출생
*1982년 홍익대학교 미술교육과(서양화)졸업
*1994년~1997년 중국 루쉰 미술대학 목판화 연구원
*1996년 중국 루쉰 미술대학 명예 부교수
*1997년 한국 목판문화 연구소 개설
*2017년 한국 목판문화원장세요.

▶ 개인전

*1984년 서울 그로리치 화랑
*1992년 서울 그림마당 민, 전주 온다라 미술관, 부산 갤러리 누보
*1994년 서울 현화랑, 부산 갤러리 누보
*1995년 일본 동경 나까지마 갤러리, 중국 심양 노신 미술학원 미술관
*1997년 서울 이십일세기 화랑, 대구 동원화랑
*1998년 미국 L.A. 컨벤션센터(98코리아엑스포), 서울 도올 갤러리
*2000년 서울 Art side Net, 전주 얼 화랑
*2004년 서울 공평 아트센터
*2005년 충북 아트페어 특별전
*2009년 중국 북경 ART SIDE Beijing
*2012년 서울 인사아트센터
*2014년 서울 아라아트센터 '나무에 새긴 30년' 목판화전

▶주요 단체전

*1982년 2918(서울 관훈 미술관)
*1986~7년 한국 민중판화전(오사카, 뉴욕)
*1992년 3인 판화전(독일 쾰른 안파리나 화랑)
*1995년 전국 민족미술연합 창립전(서울 미술회관)
*1996년 아시아 판화 미술축제(부산 문예회관 전시실)
*1997년 오늘의 한국 목판화전(중국 심양 노신미술학원 미술관)
*1998년 세계의 장서표전(중국 심천)
*2000년 서울 판화 미술제(서울 시립미술관)
*2003년 한국의 숨결 판화전(뉴욕 버팔로 앤더슨 갤러리)
*2005년 한·중·일 목판화전(서울 일민미술관)
*2005년 동방에서 부는 바람(미국 워싱턴)
*2006년 아시아는 지금 전 (서울 중국 베이징)
*2012년 교과서 속 우리 미술(서울대학교 미술관)
*2013년 대숲에 부는 바람 풍죽(국립 광주 박물관)
*2014년 The Land & The People-한국현대 목판화전
*2016년 '광화문 미술행동' 결성 대표 역임
*2017년 광장 목판화전(광화문 궁핍현대미술광장)
*2018년 2018창원조각비엔날레(성산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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