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경자년 새해가 밝은지 며칠이 지났다. 멋진 연하장이 카톡이나 메일 문자 방에 예쁘게 와 있고 좋은 하루를 비는 인사가 넘치니 행복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유머가 풍부하고 체구가 큰 당숙모 생각이 난다. 일찍 혼자되신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셨던 당숙모가 오시는 날은 등잔불을 밝히고 살던 우리 집 마루에 남포등을 켜서 마루위에 걸었다. 방에는 호야 등이나 촛불을 켰다. 어떻게 알고 오시는지 마을 사람들이 우리 대문에 줄을 이었다. 방안 가득 앉아서 당숙모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를 들었다. 흥부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을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읽어 주셨다. 장화 홍련 전을 듣다 계모의 음모를 들으며 '웅성웅성' 혀를 차며 글 속에 빠져들었던 아련한 추억이 고개를 든다.

텔레비전도 없고 집집마다 마루 기둥이나 방에 동그란 스피커로 라디오를 유선 방송을 듣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바탕 글을 읽고 나면 당숙모는 네모반듯한 상을 앞에 놓고 대나무 통을 흔들어 마주앉은 사람의 생일과 난시를 묻고 사주를 봐 주셨다. 사람들은 한 줄의 글로 초년 중년 말년의 운세를 풀어 들려주면 어찌 그리 잘 맞추느냐며 신통한 표정을 지었다. 당숙모는 중매를 100쌍이 넘게 하셨단다. 우리집안의 외숙모나 사촌은 다 당숙모의 중매로 인연을 맺으셨다.

당숙모는 우리들에게 항상 덕담을 잘하셨다. 욕도 부자가 될 놈이라고 하시고, 키가 작은 동생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데레샤야, 언니만큼 크려면 신발에 비료를 조금 넣고 신어봐 그러면 키가 큰다"고 농담을 하셨다. 유난히 눈에 다리끼를 달고 사는 친구한테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목에 눈썹을 뽑아서 돌 위에 올려놓고 멀찌감치 서 있다가 돌을 차면 내 다리끼 사가라고 하고 도망을 치라'고 가르쳐 주셨다.

당숙모는 노년에 뇌경색으로 고생을 하시다 돌아 가셨지만 며느리가 효부라서 지극한 효도를 받았다.

지금 살아계시면 104살 정도 되셨지만 문맹자가 많던 시절에 할아버지께 한학을 배우고 글을 깨우쳐 인기 만점으로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마력을 지니신 분이었다.

요즈음 길을 걷다 보면 철학관이나 사주 카폐란 간판이 보인다. 차를 마시며 재미로 보는 사주를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새장의 십자매가 바구니 가득 들어있는 점 괘를 주둥이로 뽑아다 주는 공원에서 보는 점도 있고, 컴퓨터로 보는 운세도 있다. 미래를 점쳐보는 호기심을 불어 넣는 시기는 새해 음력 설 전후에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월이 가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등잔불이나 호야등, 남포불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내 초등하교 시절이야기에 불과하다. 세월은 빠르게 물질문명을 변화 시켰다. 가로등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태양광 전기를 만들어 쓰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요즈음은 뮤지컬이라 이름 지어 공연이 펼쳐지지만 시장 한복판에 천막이 쳐지고 국악과 얼굴에 분장을 한 유랑극단들이 들어와 약도 팔고 호동왕자나 신문고 등 한겨울 내내 볼거리를 연출하던 때가 있었다.

내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당숙모는 소외된 시골마을 사람들에게 고전을 읽어 주며 사주를 봐주는 일을 업으로 삼으셨지만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도하는 전도사였다. 당숙모와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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