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기사장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기사장면

말위에서 하는 마상무예는 격구이외에도 국제사회에서 인기리에 성장하고 있는 종목이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아 맞추는 기사(騎射, horseback archery)가 그것이다. 기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을 타고 전쟁을 하는 시기부터 가장 위력적인 무예로 존재했다. 고대와 중세 유라시아 유목민들과 이란, 인도, 그리고 헝가리를 비롯해 몽골과 투르크, 동유럽, 메소포타미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됐었으며, 남미의 팜파스, 북미의 넓은 초원의 사람들사이에 널리 보급됐다. 말 위에서 활을 쏘기 위해서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말고삐를 놓아야 하는 승마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은 넒은 초원 지역의 원주민들의 경우 생존수단을 위한 사냥과 가축보호, 전쟁에서 사용됐으며, 특히 전쟁에서는 가장 기동력을 자랑하는 무예이기도 했다.

고려시대 천산대렵도 복원 그림
고려시대 천산대렵도 복원 그림

이러한 기사는 고구려의 무용총 벽면에 그려진 수렵도(狩獵圖)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상징을 나타내는 사료로 자주 등장하는 이 벽화는 힘차게 말을 달리면서 활시위를 힘껏 당긴 무사들이 사슴과 호랑이를 쫓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벽화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산악지형에 적합한 형태의 말, 작은 활과 화살, 하체만으로 말을 통제하는 승마술이 돋보인다. 특히 방위와 속도를 원리로 하는 기사법과 이를 기반으로 말과 마구, 활과 화살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법이 등장한다. 이것은 고난도의 승마술과 기사법이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수렵도에는 뒤로 돌아 활을 쏘는 방식이 눈에 띈다. 이 방식은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진 '페르시안 샷'으로 적과 상대하지 않고 퇴각하면서 화살을 쏘아 계속해서 적을 공격하는 기사전술방식의 기사법중 하나로 기사에 있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유럽기사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의 모구경기 장면
유럽기사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의 모구경기 장면

고려의 최우장군은 날마다 마별초(馬別抄)로 하여금 기사를 수련시켰으며, 당시의 귀족계급 무인들은 말을 타고 수렵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공민왕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에는 고려시대의 기사를 통한 수렵방식이 잘 묘사돼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는 무과 초시 및 복시에 적용된 무예중 하나로 기사종목이 활용됐는데, 여기서는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아 목표물을 맞히면 1발에 5점을 주었고, 35보(步) 간격으로 세워 놓은 지름 1자의 짚으로 만든 인형 5개를 연속해서 맞히는 방식이 적용됐다. 이러한 기사는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중요한 무예로 인식됐으며, 왕이나 무관들의 수렵활동이나 기동성을 언급한 사료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화약과 총기류의 발달로 그 위력이 약해져 차츰 쇠퇴해졌다.

현대스포츠로 복원된 기사경기장면
현대스포츠로 복원된 기사경기장면

이러한 기사는 근대이후 우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야부사메(流鏑馬)가 전통을 이어가며 세계에 일본문화의 하나로 알려져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어 판세는 확연히 달라졌다. 우리나라 기사법이 경기표준화를 만들어 세계 70여개국에 보급된 것이다. 조선시대 무과시험의 방식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마사희, 그리고 각종 문헌을 근거로 옛 방식을 살리고, 현대적인 스포츠 장비를 접목해 스포츠화에 성공한 것이다. 말이 달리는 시간과 표적에 맞춘 화살의 점수를 합산해 승패를 겨루는 경기로 승화한 것이다. 근대이후 전통스포츠가 세계화하는데에는 경기표준화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스포츠계의 원론을 제대로 적용한 것이다.

복원된 기사법중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기사법의 하나인 모구(毛毬)가 있다. 이것은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것으로 앞 말에서 끌고 가는 모구를 뒤따르는 말을 탄 이가 쏘아 맞추는 것이다. 실전 훈련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요나라에서 유래됐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명맥은 우리나라가 잇고 있다. 이 모구 역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복원해 스포츠화를 통한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각종 국제기사대회에서 모구종목은 상당히 격렬해 단연 기사경기대회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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