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 청주 타일 업계 산증인 '이정복 동원타일 도기상사 대표'
[창간30주년] 청주 타일 업계 산증인 '이정복 동원타일 도기상사 대표'
  • 안성수 기자
  • 승인 2020.0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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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3역 하며 버틴 30년… 열정·뚝심으로 일궜다"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30년을 일궈온 자신의 사업장에서 미소짓고 있다. / 안성수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30년을 일궈온 자신의 사업장에서 미소짓고 있다. / 안성수

[중부매일 안성수 기자] 철두철미, 원리원칙 성격을 가진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는 30여 년간 운천동 한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청주지역 타일업계의 터줏대감이다. 1988년 4월 9일 7평 남짓한 상가에서 타일 장사를 시작한 김 대표는 당시 8번째로 청주권 내 타일업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내로라했던 타일 업체도 많았지만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많은 곳이 무너져내렸다. 그때 당시 같이 길을 걷던 업체는 현재 동원타일을 비롯해 4군데만 남아있다. 현재는 300개도 넘는 업체들이 청주권내에 운영중이지만 인지도에서는 단연 동원타일이 높다.

성격만큼 똑 부러진 성격 덕에 이 대표는 세금한 번 밀린 적이 없다. 사업장이 커질때까지 자금, 유통, 인맥 관리 등 1인3역을 해오느라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오랜 시간 일해오며 바가지 한 번 없었고 고객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켰다. 깐깐한 성격 탓에 주변 지인들이 다소 어려워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투명하고 원리원칙대로 움직여 잡음도 적고 일을 하기가 오히려 수월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올해 71번째 생일을 맞은 이 대표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 힘겨웠던 시간을 이겨내며 살아왔다"면서 "매일 일로 땀에 절어있는 모습에 친구들도 참 안타까워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그 당시 나처럼 일하라고 하면 1억을 줘도 안할 것"이라고 웃으며 소회를 밝혔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이 고향인 이정복 대표는 충주고를 졸업 후 1976년 아내 박순자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 두 부부는 서울로 상경, 이 대표는 굴지의 기업 삼부토건의 자재부에서 재직하며 자재관리 세무, 회계 등 자금 관리 업무를 배웠다. 그것이 현재까지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도움이 되는 나의 보물이라고 이 대표는 자평했다.

그러나 시련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사우디 토목공사에 이정복 대표도 파견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해외파견을 나가면 아내를 두고 최소 5년은 혼자 나가 있어야 했다. 젖도 못땐 아들 둘도 눈에 밟혔다. 고심했다. 그렇지만 가족이 먼저였다. 결국 이 대표는 1982년 사표를 내고 짐을 싸 청주로 내려오게 됐다.

"파견 근무를 제의받고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몰라요. 아내를 혼자 두고 먼 곳을 떠나는 게 너무 맘에 걸렸어요. 아내 혼자 자식 둘을 어떻게 키워요. 친정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번이지."

동원타일 도기상사 내부 전경. / 안성수
동원타일 도기상사 내부 전경. / 안성수

막상 청주로 왔지만 살길이 막막했단다. 기술도 없었다. 삼부토건에서 5년간 일을 해서 모아온 돈도 가까운 친척이 관리해 준다며 가져가 놓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그 당시 손에 쥔 돈은 고작 200만원이었어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이 돈으로 수동 근처에 구멍가게를 차렸죠. 결과는 하루 매출 3만원. 순익도 별 볼일 없었죠. 굶어죽을 뻔했어요."

살기 위해 있는 일 없는 일 도맡아서 돈을 벌었다. 기술도 많이 없었지만 운전, 수리 등 안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던 중 유통 관련 업체 사장의 제의로 타일 유통업에 발을 들였다.

"때마침 사회 분위기가 새마을 운동 붐이 일며 새로운 변화의 시대로 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어요. 재래식 화장실에서 수세식 화장실로 바꾸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죠. 타일 시공이 주를 이룰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돈은 없었지만 자신감만은 넘쳤단다. 1987년 11월 사표를 냈고 사업구상을 했다. 그러던 중 인삼 농사를 짓던 처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800만원의 여윳돈이 생겼는데 투자해 보겠다는 제의였다. 이 자금으로 이 대표는 사표는 낸 다음해 인 1988년 4월 9일 개발지역이었던 운천동 모퉁이 한 켠에 7평 남짓한 사업장을 빌려 '동원타일 도기상사'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보증금 200만원, 업무용 자동차 200만원, 개업부대비용 200만원 하니 남은 금액은 고작 200만원이더라고요. 이 200만원과 외상을 포함해 타일자제를 가져와 바닥에 전시하고 그 위에 서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발품도 팔고, 홍보, 배달도 하고 그야말로 1인3역이었죠."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타일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성수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타일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성수

새벽5시에 일어나 전날 밤에 미리 실어놓은 타일을 배달하고 와 문을 열었다. 무거운 타일들을 등에 지고 고층을 오고 갔다.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영업과 배달을 하느라 하루 자는 시간은 고작 4~5시간에 불과했단다.

"모임에 나갈때도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부족해 항상 땀에 절은 옷을 입고 나갔어요. 친구의 90%가 공무원인데 항상 옷좀 갈아입고 씻을 시간도 없냐며 나무랐죠. 지금은 일거리 없냐고 연신 전화가 온다. 이럴 때 그래도 일을 한 보람이 있다는 걸 느껴요."

특유의 성실함으로 차곡차곡 영업망이 쌓여가자 찾아오는 손님이 점점 늘었다. 덕분에 오픈한지 2년 만에 골목 안에 있던 상가에서 도로 앞 상가로 이전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 대표는 현재까지 30년 동안 자리를 굳히고 타일 장사를 한 것이다.

"지게차도 장비도 없던 시절에 모든걸 몸소 다했어요. 일도 하고 자금관리도 하고. 업무강도가 너무 강해서 온몸에 안아픈 곳이 없었어요.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해야했죠".

공을 들인만큼 장사 규모는 점점 커졌다. 처남에게 빌린 800만원도 바로 갚았고 옆 상가까지 임대를 해 규모를 늘렸다. 그렇게 지속적인 확장을 진행하다 지난 2005년 건물을 매입해 버렸다. 현재 규모는 약 120평.

사업장이자리를 잡은 뒤론 사회활동에도 뛰어들었다. 국제로터리클럽 충북지부 부총재, (사)재청괴산군민회 회장를 지냈고 현재는 재정괴산군민회 고문, 충북도 주민자치협의회 이사, 운천동 주민자치위원 등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중이다.

30년간 일군 이정복 대표의 사업장은 둘째아들 이원규(39)씨가 대를 이을 예정이다. 현재 이원규씨는 아버지의 오랜 노하우와 경험을 이어 받아 자신만의 타일, 주방관련 업체를 꾸려나가고 있다.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30년을 일궈온 자신의 사업장에서 미소짓고 있다. / 안성수
이정복 동원타일 대표가 30년을 일궈온 자신의 사업장에서 미소짓고 있다. / 안성수

"할만큼 했지요.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고생도 많이 했지만 후회보다 잘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아들이 자진해서 일을 배우고 자기만의 사업장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예전 제 모습이 생각나요. 고맙고 기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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