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지난 주 증명사진을 찍었다. 서류 등 필요한 데가 생겨 아내도 같이 찍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찍었던 사진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곳에서 찍지 않았다.

볼일을 보다 생각이 나서 마침 옆 사진관에 들러 찍었다. 이번에는 이마도 보이고 점도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니 몇 십 년째 주름살 때문에 늘 앞으로 내렸던 머리를 위로 빗어 넘겨야 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올리는데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요즘 들어 거울을 보고 순간 '누구지?'라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관 거울 속 내 모습은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잔 터라 더 피곤해 보였다. 사진사 분의 주문이 이어졌다.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네네… 좀 더, 턱을 안으로 당기고…"

입꼬리에 힘을 주지 말고 눈을 크게 뜨라고 했다. 그런데 난 입꼬리에 힘을 잔뜩 주어야만 눈이 커지는데, 점점 자신감이 쪼그라들었다. 혼자 휴대폰으로 찍을 때면 나름 괜찮은데…, 남이 찍어주는 사진은 어색하다.

이마가 보이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찍은 다음 앞머리를 내리고 평소처럼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미소가 영 어색하기만 하다. 나름 웃는다고 한 표정이 우는 듯 슬픈 표정이다.

30분을 기다렸다. 금세 두 가지 사진이 나왔다. 하나는 원래 내 모습이고 나머지는 수정을 한 모습이었다. 똑 같은 옷을 입었는데 앞머리가 있고 없고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던지, 눈으로 왔다갔다 사진을 보니 더 웃음이 났다.

두 사진을 보면 한 10살 이상은 차이가 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내 얼굴 같지 않지만 늘 수정해 준 깔끔한 사진이 맘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 얼굴이랑 가장 닮은 사진을 주면 못 찍는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내 얼굴이랑 가장 닮게 찍었으니 제일 잘 찍은 사진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마에 주름이 심하고 피부도 거뭇거뭇하고 점도 있는 내 얼굴을 그대로 담은 사진이 좋아졌다. 수정이 안 된 사진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이 든 내 모습이 싫지 않고 좋았다. 어떻게 보면 그 모습에서 살짝 측은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 자신을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다독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눈을 보면 더 그런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내 증명사진을 쭉 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최근까지. 초등학교 6학년 증명사진을 찍었을 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눈을 감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던 일.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갔던 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며 교환했던 사진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빡빡에서 조금 길게 머리를 해도 되어 최대한 길러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참 맘에 들었다.

요즘은 사진 찍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휴대폰으로 연신 찰칵찰칵 찍어대지만 맘에 드는 사진이 많지 않다. 그래도 해마다 찍은 사진을 보면 점점 머리가 빠져 지금이라도 많이 찍어 두어야지 한다.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사진이 최고의 사진이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내 자신. 그런 내 자신에게 올해도 더 뜨겁게 살고, 더러 상처가 나더라도 그 상처가 값진 흔적임을, 삶의 선물임을 말해주고 싶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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