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민주주의는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요즘처럼 혼란스런 나라때문에 걱정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다.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는 헌법·법률의 완전성으로 지켜지는게 아니라 "법적 권한을 신중히 사용하려는 '제도적 자제'와 상대편을 통치할 자격을 갖춘 경쟁 상대로 인정하는 '상호관용'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결론이다.

청와대가 추미애(법무부장관)를 앞세워 정권 실세들의 불법과 비리에 칼을 댄 검찰을 응징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이 책을 떠올렸다. 선출된 권력이 법적권한을 오남용 한다면 과연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을까.

추미애는 조국 게이트와 울산시장 선거개입, 유재수 전부산부시장 비리등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윤석열(검찰총장)의 핵심라인들을 대부분 한직(閑職)으로 날렸다. 이어 수사를 직접 담당해온 차장·부장급에 대한 인사도 단행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 이 정권은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과 공수처 법안을 밀어 붙인데 이어 윤석열이 버티고 있던 검찰까지 장악한다면 못할 일이 없게 됐다. 온갖 비리 백화점인 전 법무부장관과 민주정치의 근간인 선거질서를 무너트린 전 민정비서관, 부정부패의 화신인 측근 실세등은 표정관리를 해야 할 듯하다.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 힘이 과연 검찰에 남아있을까.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는 날 문재인 대통령으로 부터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립서비스를 실천한 윤석열은 수족이 잘린 채 벼랑 끝에 몰린 신세가 됐다. 윤석열은 그릇된 길로 빠지고 있는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냥개에서 벗어나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적 중립성을 되찾기 위해 검사로서 모든 것을 걸었다. 죽은 권력도, 살아있는 권력도, 진보·보수도 예외 없었다. 죄가 있다면 반드시 죄 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권력의 벽은 너무 높고 단단했다. 정권의 보복에 고립무원이 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어쩌면 검찰도 이 지경이 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이 정권에서 검찰의 적폐수사를 지휘했던 김우현 수원고검장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이 같은 상황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자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역대정권의 충견역할을 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검찰개혁'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권 들어서 일부 특권층의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과 비리는 외려 검찰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청와대 비서진이 앞장서서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후보 당선을 위해 경쟁후보의 하명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사실로 밝혀진다면 청와대가 불법 선거공작에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가까운 공직자의 비리의혹도 감싸주었다. 그리고 수사대상자를 새 법무부장관에 임명해 검찰인사를 휘두르게 했다.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 검사들을 찍어낸다면 검찰은 빈껍데기가 된다.

이번 검찰인사는 16년 노무현 정부의 데자뷰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대선 자금 수사를 하면서 새 정권 실세들을 정조준했고 이 때문에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충돌했다. 강 장관은 중수부 수사팀을 사실상 해체하는 인사를 준비했지만 송 총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인사안이 실행되진 않았다. 참여정부는 이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민심을 의식했고 상식은 갖추고 있었다.

이 정권은 자신들만 정의를 독점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사법개혁을 앞세워 법위에 군림하며 특권층의 사회거악을 조장하고 있다. 오로지 정권창출에만 목을 매면서 국민을 현혹시키고 권위주의 정권으로 퇴행하고 있다. 검찰과 공수처만 손아귀에 쥔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 권력자도 언젠가는 한없이 초라하고 불쌍한 죄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웅변한다. 청와대가 검찰 장악에 나선 전날 MB(이명박)는 대통령 지위를 활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의혹만으로 23년형을 구형받았다. 죽은 권력인 MB의 현재를 보면 살아있는 권력의 미래가 보인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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