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어쩌다 우리 집 거실 창 방충망에 몸을 붙이고 겨울잠을 자는 무당벌레를 본다. 자신의 몸을 흰 실로 감싸고 바람이 불면 바람 힘만큼 흔들리고 비가 내리면 그대로 젖는다. 가족 중 나 말고는 아무도 무당벌레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도 우연히 붉은 빛 날개에 검은 동그란 무늬를 가진 무당벌레를 보지 않았다면 거무스름하게 변한 작은 존재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먹을 채소는 친환경으로 농사짓겠다는 생각으로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건강한 채소를 얻기 위해서는 밭도 휴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감자를 캐고 땅은 잠시 묵정밭이 되었다. 무더위가 물러서지 않는 8월의 중순 쯤 밭을 다시 일구었다. 거름과 비료도 넉넉히 주었다. 독한 거름 냄새가 사라진 후 꽃모종 심듯 배추를 심었다. 손가락 크기의 작고 여린 배추를 가지런히 심고 보니 밭이 환하다.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늘도 없는 밭에 남겨진 여린 배추를 보며 돌아서는데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스쳤다. 대견하면서도 불안하고, 걱정되면서도 흐뭇하여 자꾸 돌아보았는데 배추에서도 설레는 마음이 느껴졌다. 건강하게 자란 내 아이처럼 배추도 뿌리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건강한 배추는 잎을 만져보면 안다. 초록빛이 쏟아질 듯 윤기 나는 배춧잎을 쓰다듬으면 솜털 같은 가시에 까슬까슬한 통증을 느낀다. 하루쯤 깎지 않은 게으른 수염과 마찰에서 오는 전율 같은 아찔한 이끌림은 거부할 수 없는 가을배추와의 교감이다.

나만 배추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배춧잎 사이사이에서 씨앗 같은 똥을 보았다. 벌레가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한다. 아니면 약을 주면 된다고도 한다. 약이란 말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약을 쳐서 잘 키우는 것보다 소신껏 키우고 싶었다. 들은 체 않고 벌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토실하게 잘 자란 배추에 진딧물이 보였다. 잎 속은 새까맣다. 다른 배추에도 옮길까 싶어 뽑았다. 빈자리 흔적이 크게 보였다.

"진딧물은 약 아니고는 이길 방법이 없어. 배추 먹으려면 당장 약 뿌려요."

근처에서 일하던 할아버지가 오셨다. 성큼성큼 밭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배춧잎 깊이에서 벌레를 쏙쏙 찾아내어 짓이기듯 밟아버린다. "안뎌, 안뎌, 에구…." 혼잣말이듯 아니면 나에게 하는 말인지 성내면서 배추를 하나하나 만져본다. 투박하고 마디가 굵은 구릿빛 거친 손이 지날 때마다 한 마리 벌레가 잡혔다. 진딧물도 손등으로 묻어 올랐다. 가장 잘 자란 배추 몇 포기가 할아버지 손에 뽑혔다. 빈 곳이 많아졌다. 그다음에도 진딧물 낀 배추를 또 뽑아 버렸다.

김장하려고 남아 있는 배추를 뽑았다. 밭에 있을 때는 묵직해 보였는데 겉잎을 떼어내고 보니 속도 차지 않았고 신선하지도 않다. 벌어진 잎 속에서 벌레도 쉽게 보였다. 진딧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정성 들인 시간 때문에 버릴 수 없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긴 진딧물 낀 배추와, 농약 사용의 간극을 생각하며 씻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빨간 날개를 웅크리고 꼼짝 않는 무당벌레를 본 순간 가슴이 서늘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 무당벌레를 갖다 놓을 수도, 버려지는 배춧잎 속에 넣어 버릴 수도 없어 난감했다. "지금은 무당벌레 눈 씻고 봐도 없어" 할아버지 말이 자꾸 따라왔다. 근처 밭에 놓아줄까, 생각은 수없이 좋은 방법을 찾으면서도 손은 베란다 방충망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미안한 마음으로 그곳에 놓았다. 내 집에서 밖으로 보내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고 자연에서 꼭 살아남기를 바랐다.

안방 베란다에서 거실 방충망까지 무당벌레는 무슨 생각하며 왔을까. 허공과도 같은 8층에 자신을 매몰차게 버린 손이 배춧잎을 쓰다듬던 그 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진딧물을 보면서도 약을 뿌리지 않고 친환경을 고집하더니, 필요 없어진 작은 생명을 가볍게 버리는 이중성에 경고라도 하고 싶었나. 그래서 밭이 있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콘크리트 벽을 타고 거실 방충망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빨간색 날개를 납작 붙여 불빛같이 신호를 보내다가 겨울잠에 들었을 것이다.

겨울잠 자는 무당벌레 시간은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 말라버린 듯 검고 작은 무당벌레의 비상을 기다리는 마음은 불안하고 미안하다. 건강하게 자는 거지. 겨울이 궁금하지만 잘 견디고 있는 거지. 무당벌레를 보며 혼자 하는 말이다.

약력
▶1996년 '창조문학'으로 등단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수필집 '뒤로 걷는 여자', '꼬리로 말하다', '네가 준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금 수혜, 충북수필문학상, 허균문학상 수상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비존재 회원
▶현 방과후 학교 독서·논술 강사.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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