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릴 하우스 (Riehl House, 1907, 독일 포츠담) / 건축의 탄생에서
릴 하우스 (Riehl House, 1907, 독일 포츠담) / 건축의 탄생에서

산업혁명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18세기가 지나고, 함께 몰아쳤던 모더니즘은 19세기에 건축으로 뒤늦게 파고든다. 이 시기에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이 될 독일 출신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96)가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가 있었는데, '신은 죽었다.'는 한 마디로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간 인류의 슈퍼스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였다. 그의 철학을 추종했던 독일의 철학자 알로이스 릴(Alois Riehl, 1844~1924)은 자신의 집 설계를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였던 브루노 파울(Bruno Paul, 1874~1968)에게 의뢰한다. 그러나, 브루노 파울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어린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단독으로 설계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신입 미스는 사장님 없이 혼자 건축설계 미팅에 나갔다. 건축주였던 알로이스 릴은 왜 파울과 함께 오지 않았냐는 말과 함께 경력도 없는 어린 당신에게 설계를 맡기는 건, 실험실의 생쥐가 되는 꼴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미스는 모두가 경험자만 원한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일을 못 할 거라며 제발 믿고 자신에게 설계를 맡겨달라고 한다. 미스의 위트있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릴은 결국 미스에게 설계를 맡겼다. 대신 미스는 릴 하우스를 짓기 전에 니체를 알아야만 했다.

니체는 지상과 천국, 현상과 실재, 공간과 시간,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인 세계를 부정했다. 니체는 어차피 모든 현상은 자신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처럼 자신의 삶 밖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분리되어 있는 이원론을 부정하고, 모든 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일원론을 주장했다. 그 정신을 받아들인 미스는 릴 하우스를 풍경과 공간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게 창을 많이 만들어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과거의 전통양식을 깨뜨리고, 오로지 인간의 영역 하나로 통합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거기다가 이 주택에 기능 면을 강조해 기존 전통양식의 주택과는 다르게 단순하게 지었는데, 미스가 이때부터 모더니즘을 릴 하우스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릴 하우스의 개념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판스워스 주택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미스는 명실상부한 건축계의 거장으로 부상한다. 미스는 알로이스 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그는 현재와 판이한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처음이라 거절당할 뻔했던 자신의 첫 프로젝트에서 간절했던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언제나 처음은 어렵다. 나는 처음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거렸었고, 처음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허둥댔었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하나를 들고, 엄청 떨리는 마음으로 혼자 발표를 하러 가기도 했었다.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하지만, 새로웠다. 우리는 이것에 이끌려 어렵고, 두려워도 기꺼이 내 한 몸을 새로운 것에 던진다. 어제는 연말부터 미루고 미뤄왔던 이불세탁을 하러 빨래방이라는 곳을 처음 갔다. 빨래방이라는 곳의 시스템은 무인으로 운영되어서, 혼자 설명글을 읽고, 기능을 습득해야만 했다. 그곳은 폰번호로 가입한 뒤에 돈을 충전하고, 세탁기를 고른 뒤 작동하는 아주 간단한 원리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다. 모든 절차를 거치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순간, 해냈다는 뿌듯함은 미스처럼 원대한 프로젝트를 꿈꾸며 이뤄낸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하나 이뤄냈다는 성취감의 무게는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빨랫감이 뽀송하게 말려져 나왔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따뜻한 방구석에서 엉덩이를 떼는 게 뭐가 그리도 힘이 들었었는지, 마음을 먹고 집을 박차고 나오면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매번 새롭게 깨닫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과감하게 엉덩이를 떼고, 기꺼이 처음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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