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오늘 제주에서는 낮기온이 20도가 넘어서 반팔을 입고 다녔다는 데요", "한겨울인데 아이스크림은 잘 팔리고 호빵은 매출이 줄었습니다." 요즘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날씨관련 뉴스 중의 일부다. 실제로 올 겨울 기온을 전년도와 비교해 보면 많이 따뜻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일부터 7일까지 평균기온은 영하 1.3도였는데, 올해 같은 기간은 2.6도로 3.9도나 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 겨울이라고 하면 으례히 떠오르던 '동장군'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색할 지경이다. 동장군은 원래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특히 지난 6일은 24절기 가운데 23번째 절기인 '소한'이었다. 작은 추위라는 뜻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도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었을까? 그런데 올해 소한에는 추위는 커녕 여름 장맛비 같은 장대비가 종일 내렸다.

한 겨울의 날씨가 마치 포근한 봄 같이 춥지 않아 좋긴 한데 마냥 웃을 수만 없는게 현실이다. 이미 따뜻한 겨울로 인해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의 대표 지역축제는 1월의 중순임에도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올해 농사를 앞두고 있는 농민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날씨가 따뜻하면 당연히 농사에 좋은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겨울철 난방비가 많이 드는 비닐하우스 농가와는 달리 그렇지 않은 노지 농가에서는 따뜻한 겨울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따뜻한 날씨 속에 식용 보리와 사료작물 같은 봄 농사의 웃자람 현상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하니 작물들이 제 시기보다 일찍 싹을 틔우고 올라오는데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추워지기라도 하면 동사에 걸리기 쉽다. 그리고 아무래도 겨울의 햇살은 봄보다 약하기 때문에 뿌리의 성장이 더디고 생육 부진을 초래한다.

실제로 작년 가을에 심은 보리, 마늘, 양파 같은 작물들의 웃자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 따뜻한 날씨로 인해 각종 병충해도 심각하게 우려된다. 추운 겨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해충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따뜻한 날씨 속에 먹을 것이 풍부하다 보니 월동해충들이 빠르게 부화하게 되고, 이렇게 부화한 해충들은 줄기의 양분을 빨아 먹거나 배설물로 과수나 과일을 상하게 하는 등 농작물을 해치게 된다. 즉 따뜻한 겨울이 오래 지속될수록 병해충의 우려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작물이 본격적으로 생육하는 2~3월까지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면 사과나 배 같은 과수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자고로 겨울은 춥고 눈도 많이 오고 해야 풍년이 드는 것이야." 나이 지긋하신 시골 어르신들의 말씀과도 같다.

이제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이다. 지금까지 따뜻한 겨울 덕분에 미소지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추운 겨울을 기다리는 농민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묻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는 '큰 추위'를 뜻하는 '대한'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겨울같은 겨울'을 마지막으로 장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br>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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