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초록빛 우단(veludo)같은 잔디, 살갗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바람, 대명천지 남태평양의 하와이 섬 도심 한복판 Aala 공원이다. 하와이는 축복받은 아름다운 땅이다. 또 세계에서 최고의 풍요와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의 도시다. 그러나 곳곳에서 노숙자(露宿者)를 목격할 수 있다. 최소한 얼어 죽을 걱정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누리는 행복과 환경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일까? 환경적 요인을 아무리 후하게 쳐도 행복의 충분조건은 될 수는 없다. 풍요로운 환경이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조차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직 자기의 삶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게으름과 온갖 유혹과 고통을 이겨낸 용기와 노력의 결과로 존재할 뿐이다.

얼마 전 집 근처 대학교에서 수채화와 심리학 통합강의를 수강했다. 캔버스 한 장에, 마음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할 때부터, 마침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까지 5단계로 색칠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분노가 폭발했을 때는 붉은색, 마음이 우울할 땐 암갈색, 평화와 행복을 느낄 때는 연두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마음이 변화되는 원인을 적었다.

뜻대로 일이 잘 풀리고 가정이나 직장에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는 평화롭고 행복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거나, 내 말을 경청하지 않았을 때 짜증이 났다. 뻔뻔한 거짓말을 태연히 하거나, 자기주장만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진심을 오해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우울하였다. 변명만 늘어놓거나, 나를 무시하고 놀린다고 생각할 때 분노가 폭발했다.

하찮고 작은 것들로 내 마음의 평온은 너무 쉽게 깨졌다. 더구나 그 단초(端初)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가까운 가족, 친구, 동료, 친척과 이웃이었다. 그들에게서 내가 받은 고통, 또 내가 주었거나, 받았던 뼈아픈 말들이 송곳처럼 내 마음의 구석구석을 찌른다. 그들이 내 마음을 할퀴고 상처를 냈다. 나도 그들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내어 돌려주었다.

내 마음의 불안과 우울함, 슬픔과 분노의 원인과 상대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태도에 따라 내 마음의 상태가 수시로 변한다. 나는 그들의 꼭두각시이고 종속변수다. 그들이 내 행복을 좌지우지한다.

언제부터인가 내 자신 스스로가 주재하는 내 삶이 없어져 버렸다. 내 마음의 평화와 분노의 모든 것이 타자에 의해 결정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자랑과 부끄러움, 기쁨과 슬픔, 불안과 고통, 감동 그리고 꿈조차도 모두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껍데기에 불과했다. 나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 마음밭조차 스스로 가꾸지 못하는 허깨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의 탓을 하고 살아온 꼴을 생각하니, 갑자기 해골에 고인 썩은 물 먹고 똥물까지 게워낸 원효스님이 생각난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적과 싸우는 것이다. 이제야 내 마음에 숨어 있던 내면의 적 하나를 찾아낸 셈이다. 나 같은 범인(凡人)은 '내 탓, 네 덕(德) 질하는 참 자유인(自由人)'이 되기 어렵다. 하물며 무애(无涯)의 경지는 언감생심이다. 다만 새해에는 크고 작은 세상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과, 누구를 원망하는 원귀(寃鬼) 신세만 면할 수 있어도 다행이다.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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