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人터뷰 - 정창훈 조각가
예술人터뷰 - 정창훈 조각가
  • 이지효 기자
  • 승인 2020.01.2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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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묻힌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혼' 손끝으로 깨운다
정창훈 조각가가 작업중인 청주 출신 독립운동 명문가의 딸 신순호 열사의 흉상. / 이지효
정창훈 조각가가 작업중인 청주 출신 독립운동 명문가의 딸 신순호 열사의 흉상.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지난해 시작한 예술人터뷰의 두번째 주인공은 진천 출신 정창훈(65) 조각가다. 윤봉길 의사, 조명희 선생, 김유신 장군 동상 등 주로 역사적 인물을 많이 제작한 정 조각가는 지난해부터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흉상을 제작하고 있다. 충북도는 오는 3월 1일 청주에 전국 최초로 '여성독립운동가 전시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이에 맞춰 10명의 흉상을 제작하며 독립운동가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정 조각가를 만났다. / 편집자

정창훈 조각가는 1955년 진천군 덕산면 산골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힘들게 보낸 정 조각가의 꿈은 화가였다. 3남매 중 장남인 그는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그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읍내 극장의 간판을 그리며 학비를 벌고 화가에 대한 꿈도 키워갔다. 학업보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고 학생들 명찰을 만들고 간판집 일을 도우며 생활비를 벌었던 그는 거의 취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 조각가는 "그때는 학교 가는 날보다 일 한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잘 졸업했다"며 "저보다 성적이 안좋았던 친구가 서울대에 진학한다고 들었을때 축하해주긴 했지만 마음 한쪽이 많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던 정 조각가. 그는 용돈을 아껴 물감을 사러 갔던 청주의 보나르 화방에서 서양화가 안승각, 정진국, 정해일, 왕철수, 이구민, 한국화가 이석구, 박영대 화백들과 도예가 임상묵 충북대 교수들을 자주 만났다고 했다. 그때 정진국 화가를 만나 목탄 크로키부터 다시 시작해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미술교육전공)에 입학하게 됐다. 그러면서 조각가 김수현 교수의 조교로 있으면서 조각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됐다.

정창훈 조각가가 작업중인 청주 출신 독립운동 명문가의 딸 신순호 열사의 흉상. / 이지효
정창훈 조각가가 작업중인 청주 출신 독립운동 명문가의 딸 신순호 열사의 흉상. / 이지효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의 재능은 회화, 글쓰기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ROTC로 군대 생활을 할 시절인 1980년 국군미술대전에서 회화로 서양화가 최고상인 국방부장관상까지 수상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았는데 이는 지방대 출신으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후 세광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10여년 근무하다 작품에 몰두하고 싶어 교사직을 그만두고 10여년간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이후 1998년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강단에서 2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정년을 하지 않고 3년정도 먼저 명예퇴직을 한 후 또 다시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조각을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물과 흙을 만져야 합니다. 작업에 집중하다보면 손이 저려와 고통스럽지만 내가 좋아서 수행의 방편으로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기도하듯이, 제가 하는 일도 수행자들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기심도, 궁금한 것도 많은 정 조각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정관 김복진(1901~1940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 출생) 선생의 묘를 찾아 다니며 그의 묘소를 직접 찾아냈고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제작을 하며 남다른 작가정신을 보여줬다.

헤이그 특사로 나섰던 독립운동가 이상설 집안의 후손이었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그도 독립운동가 같은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만든 동상들 중 대부분이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충북도는 지난해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위한 기념 전시관 개관 계획을 세웠다. 이에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10명의 흉상을 전시할 예정인데 정 조각가의 손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삶이 되살아나고 있다.

"10분의 명단을 받고 일일이 후손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어요. 생각보다 자료가 없어 제작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살았던 당시의 상황과 환경을 생각하며 시대상황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그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는 정 조각가.

그는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걸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내게 주어진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부여받은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예처럼 작업하고, 그러나 황제처럼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내 나라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작품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의 문화인류학적 측면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다는 정 조각가.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환희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에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는 오늘도 불꽃같은 삶을 살아온 독립운동가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조가가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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