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김금란 부국장 겸 대전주재

대전지역 고교생 4천800여 명이 오는 4월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선거법 개정에 따라 4월 15일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국 고3 학생은 약 14만 명으로 추정된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춰진 것은 지난 2005년 20세에서 19세로 조정된 지 14년 만이다.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세 선거권'은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18세 선거는 좀 이르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세계적 흐름과 참정권 확대 등에 비춰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 진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 없는 교실에 정치가 덜컥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한 여당과 군소 정당은 득표 계산기만 두드렸을 뿐 학생들의 선거교육,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등 관련한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차차 보완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고3 교실을 정치 실험실로 만들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일본은 지난 2015년 선거 연령을 만 18세 이하로 하향조정하면서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부작용에 대한 준비를 했다. 문부과학성은 학생 정치활동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선거교육 교재도 배포했다. 선거법처럼 연령 제한이 있는 아동복지법, 국적법 등 법령 212개와 상충하는지도 검토했다. 학교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논리로 밀어붙인 우리나라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발등에 불 떨어진 교육부는 부랴부랴 고교 유권자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2월말까지 학교에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 선거교육은 3월 새 학기에나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일선 고교에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졸업식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한 표를 호소하는 예비후보들의 행보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교실까지 들어가 학생유권자들을 만난 출마 예정자도 있다. 교실의 정치화는 우려가 아니라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정치인이 학교에서 명함 배포와 연설 등 정치활동을 해도 제약받지 않는다. 또 예비후보자들이 학교를 찾아 명함을 나눠주거나 정견을 발표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규정도 없다. 일선 학교는 교정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치인 활동을 제한할 구체적 지침이 없어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교사들의 선거운동 개입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거교육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다. 최근 부산에서 교사 본연의 업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는 사례가 처음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부산의 한 고등학교 중간고사에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험문제가 출제됐다. 이보다 한 달 앞서 다른 고교 B교사는 수업 중 정치적 발언으로 문제가 됐다. 특별감사에 나섰던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두 교사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만 18세 선거권으로 고3 교실의 정치화, 이념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또한 교실 안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계당국의 대책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김금란 부국장 겸 교육부장
김금란 부국장 겸 대전주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급기야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지 2주 만에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는 입법 보완을 요청했다. 국회가 만 18세 선거연령 인하에 따른 교육 현장 혼란에 대해 대비하지 않고 여야간 논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의 정치화 및 학습권·수업권 침해 등 교육 현장의 혼란을 우려했다. 성급하게 두드린 득표 계산기의 피해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교실의 혼란을 부추긴 정치인들이 반성과 함께 국민을 살피는 정치를 펼치길 고대해 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