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새해 첫 명절 설날이다.

설날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월 초하루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설날은 가족들이 모이는 날,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세배를 드리며 덕담이 오가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요즘은 설날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북적거리지 않는다. 설빔으로 장만해 준 옷과 신발을 설날이 오기 전부터 몇 번이고 입어보고 신어보면서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도 없다.

어렸을 적에는 설날이 큰 행사였다.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모이고 친척들도 만날 수 있었다. 설날에는 일찍 일어나서 큰댁으로 갔다. 일가친척이 거의 모이면 방, 마루, 마당까지 서서 차례를 지냈다. 주로 남자들만 지내서 난 절을 하는 모습만 지켜보며 어서 차례가 끝나길 기다렸다.

한 시간 남짓 차례가 끝나면 과자 하나라도 얻어먹을까 윗방을 기웃거렸다. 큰댁 아주머니는 우리 조무래기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과자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주전부리가 없던 시절, 제사 지낸 과자는 꿀맛이었다.

두 번째로 작은 할아버지네, 그리고 우리 집까지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러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한복을 차려입고 동네 공회당에 모였다. 한복이라야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서 크고 볼품없지만 어머니의 손끝으로 깨끗하게 세탁하고 동정을 새로 달아서 정갈했다.

한복을 입고 동네를 돌며 집집마다 세배를 다녔다. 친구들과 어르신 앞에 일렬로 쭉 서서 어설프지만 마음을 담은 세배를 올렸다. 덕담을 해 주기도 하고, 떡국을 내오기도 하고, 어느 어르신은 100 원짜리 지폐로 세뱃돈을 주시며 노래 좀 해 보라고 하신다. 그러면 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움직이고 무릎을 굽혀가면서 "어느 날 다정한 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내 곁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래 뜻 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웃어른께 세배가 끝나면 놀이를 했다. 어른들은 주로 윷놀이를, 우리들은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널뛰기를 하였다. 널뛰기는 주로 설날에만 하던 놀이였다. 가운데에 멍석을 접어놓고 널빤지를 위에 얹어 양쪽 끝에서 한복을 입고 한명씩 높이 뛰었다가 내려오던 놀이. 널빤지가 불안해서 넘어질 것 같으면 옆에서 손을 잡아 중심을 잡아 주기도 하였다.

설날은 온 마을의 축제이면서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참 좋은 날이다. 저녁이 되면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다. 그날은 마을대회로 현수막도 걸리고 각 마을마다 준비를 해서 무대도 만들고 경품도 걸렸다. 노래와 춤, 우리 동네 옆 동네를 떠나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으며 즐기는 시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설날이 주는 의미는 크다. 복덕원만(福德圓滿)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기다려주는 곳이 있고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어렸을 적 놀이의 무대가 되어주던 시골마을엔 구석구석 추억이 어려 있다. 밖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놀다가 어둑해서야 삽작문 열고 들어서면 따스한 불빛이 있고 따순 밥상이 있던 곳.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이제는 설날이 되어도 갈 고향이 없다. 마을은 있어도 집이 없고 어머니도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럼에도 정겨운 설날은 내 추억 속 영원히 기억될 풍경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