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가수 린드가 한 공연장에서 '즐거운 나의 집'을 불렀을 때 관중은 박수와 함께 가정의 정감에 감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노래의 작사자인 존 하워드 페인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였다. 그는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다. 어느 날 그는 평화롭게 커튼이 드리워진 채 환하게 불이 밝혀진 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자신의 부모형제가 그리워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평안한 가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가정은 어떤 곳일까? '집'만 있고 '가정'이 없다고 하는 세태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회학자인 '클린턴 가드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도 가정이 있다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가정을 잃었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 것이요,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편히 쉴 수 있는 스위트 홈으로 만들어야 한다.

2016 인구·주택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구성 비율 중 5인 이상의 가족은 고작 6.2%라고 한다. 반면 1인 가구 비율은 27.9%로 가장 높다. 부모는 점점 늙어가고 자식들은 더는 가족을 재생산하지 않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27살에 혼자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길러 결혼시킨 홀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로서는 둘만 살다가 며느리를 맞는다는 것이 차라리 흥분이었다. 어머니는 6개월 정도만 같이 살다가 따로 살게 해 주어야지 하고 몇 번이고 다짐하였다. 아들에게도 6개월만 같이 살다가 너희끼리 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내면서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어요. 절대 안 그럴 거예요" 그런데 아들은 결혼하고 나서 1주일 뒤부터 눈치가 이상해졌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몰래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하였다. 휴일이면 일도 없이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배회하고 놀다가 저녁에 피곤한 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다. 아들 부부는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사 가기 전날 밤,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사하는 날 아침 따뜻한 밥을 준비하였다. 아들 부부는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하고 이사 가는 집 이야기를 하며 들떠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이사하던 날 저녁 이사를 잘 하였다고 전화 한 통 없었다. 혼자 남은 외로움이 뼈 속을 파고들었다. 비가 오면 정신 잃은 사람처럼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 가서 아들을 맞이하러 가던 생각, 아무리 늦게 아들이 돌아오더라도 저녁을 안 먹고 들어올까 봐 밥을 해 놓고 기다리던 밤들이 그리웠다. 같이 살던 그 날들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 떨어져 살더라도 같이 사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중국 속담에 '비둘기에게는 3가지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반포의 효가 있다'는 말이 있다. 비둘기 새끼는 가지에 앉을 때에 항상 부모보다 세 가지 아래 앉는 새라는 것이다. 그리고 까마귀는 죽기까지 어미 새를 보살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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