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경자년 새해, 세미나장에서 예전에 같이 근무한 직원들을 만났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으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의아한 듯 '과장님 예전에도 그렇게 작으셨나요?' 한다. 민망하여 '아니야 골다공증이 와서 그래' 하였더니 안쓰러운 듯 바라본다.

직장 다닐 때까지만 해도 키가 아담하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작다는 소린 듣지 않았다.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작아졌다는 소리를 한다. 얼마나 작아졌는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깜짝 놀란다. 어린 시절은 남보다 커서 콤플렉스이더니 나이 들어서는 작아서 콤플렉스라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1950년대 시골에서는 가난으로 딸자식은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는 가정이 많았다. 학자 집안의 따님인 엄마는 공부해서 외지로 나가야 가난을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었다. 당신은 굶어도 자녀들은 학교를 보내려고 하였으나, 나는 몸이 허약하여 집에서 5㎞나 떨어진 초등학교를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건강이 회복된 후에 동생과 함께 입학한 것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콤플렉스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시골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좁은 새장에서 세상 밖으로 비상을 하게 되니 걸음걸음이 꿈이고 희망이었다. 날씨마저 입학식을 축복해 주는 듯 쾌청하다 못해 황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산모롱이를 지날 때였다. 고운 햇살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타고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는 것 같던 아름다운 풍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꿈과 희망을 품은 입학의 기쁨도 잠시, 곧 주눅이 들었다. 나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두 살이 많아서 그런지 덩치뿐만 아니라 키가 반에서 두 번째로 컸다. 그 시절에도 키가 작아서 고민했지 크다고 고민한 사람은 아마 나 혼자뿐이었을 것이다. 웃자란 데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 살 많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나 자신이 나이를 인식했기 때문에 여간 부끄럽지가 않았다. 동네에서 '언니! 언니!' 하던 동생 친구들이 학교 들어가고부터 같은 반 친구라고 이름을 부르는데 꼭 내가 모자라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다 못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눈을 부릅뜨면 '그럼 뭐라고 불러' 한다.

집에서도 그렇지만, 학교에서도 돌아다니지 않고 교실에만 있었다. 다행히 부반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교실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한다며 교실에 남아 있어도 친구들은 당연하게 여겼고, 선생님은 그런 내가 대견한 듯 자잘한 일들을 시키셨다. 교실에 남아 정리정돈을 잘하는 데다 솜씨도 있어 환경정리는 맡아 놓고 일등을 해 다른 선생님들의 시새움과 부러움을 샀다.

바깥출입은 자제하였으나 집에서 학교까지의 먼 거리를 숨어다닐 수는 없었다. 등하굣길에 큰 키를 작게 보이려고 습관적으로 어깨를 움츠리게 되었다. 엄마나 오빠들이 어깨를 쭉 펴라고 수시로 말씀하셔도 고쳐지지 않았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군 소재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큰 키에 속해 움츠리고 다녔다. 내 키는 초등학교 6학년 때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 정도도 크지 않았으나, 여자들의 평균 키보다는 조금 큰 날씬한 축에 끼어 제법 인기도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한번 움츠러든 내 어깨는 펴질 줄을 몰랐다. 공직생활에서 여자가 너무 당당해 보이면 건방져 보인다고 상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였으나 습관적으로 움츠리는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나는 근면·성실에 착실하고 책임감 있다고 인정받으면서 살았는데도 나이 많아 학교 들어갔다는 열등감 때문에 늘 움츠리고 살았다. 젊어서는 알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나이 먹어서는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한다고 한다. 콤플렉스 때문에 움츠렸던 시간에 지혜와 덕을 쌓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나누어 주고, 빛과 소금이 되었을 텐데.

나이를 먹었어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보는 사람마다 키가 많이 줄었다고 하고, 세상에 가장 귀한 보석인 손자가 '할머니 왜 허리가 꼬부라졌어.'하는 소리가 편하지 않다. 할머니 걱정해서 하는 일곱 살 손자의 솔직한 말이 귀에 거슬리는 것은 아직도 콤플렉스에 갇혀있기 때문 아닐까.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든다. 새해에는 콤플렉스 따위는 잊어버리고 내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먼저 배려하고,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 마음은 비우되 인연은 소중히 여기고, 베풀고 양보하고 덕을 쌓으며 복을 지어야겠다. 자녀들이 신경 쓰지 않게 건강도 챙기고,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리라. 맑고 고운 생각으로 한올 한올 수를 놓듯 남은 내 삶을 아름다운 무늬로 채워나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행복을 전파해 보리라. 새해 소망을 이루고자 오늘도 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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