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나라 선거는 오래전부터 보수와 진보의 패권 다툼으로 치러졌다. 두 세력 사이에 중도층이 있지만 선거판에서의 존재감이 떨어져 양 진영간 대결양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보수는 전통 사상이나 가치를 중요시해 본질적인 변화를 거부하며, 진보는 새로운 변화나 흐름에 무게를 둔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려말에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진사대부와 친원파 권문세족이 진보와 보수로 맞섰고, 조선말에는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뉘어 대결을 벌인 바 있다. 이같은 양상은 군사정권시절 치열한 다툼으로 이어졌는데 진보가 민주화를 내세워 명맥을 이어간 반면 보수는 산업화의 결실로 세를 키웠다. 이후 국민들의 손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양자는 균형을 잡게 됐다.

그러나 양 진영간 대립이 격화되고 부침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중도의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더구나 국회의원 선거 소선거구제가 정착되고, 승자독식의 정치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중도는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

오는 4월 제21대 총선도 이전 선거처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군소 정당 등의 진보세력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보수세력간 대결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민생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정권 싸움만 벌이는 패권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이 선거에 적극 참여해 책임을 묻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진영선거에 익숙한 여야 후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에 대해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졸자와 최저인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집한다고 지적했다. 제1 야당인 한국당도 의회정치와 담을 쌓고 툭하면 거리로 나가 정권 타도만 외칠 뿐 권위주의적이고 구태의연한 꼰대 정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자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적폐 청산과 세대 교체, 진영정치 청산을 약속하고 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은 것 같다.

이들 중도층을 보면 두 거대 정당의 약속을 믿지 않는 모양새다. 정당을 떠나 어떤 후보가 경제를 살려 자식을 공부시키고 가족이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만 따진다. 즉,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정치 철학과 능력, 도덕성을 갖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진보와 보수 양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민생과 도덕성을 내세운 까닭은 최근 우리사회의 현실을 보면 분명해진다. 이념을 잣대로 한 편가르기에서 시작된 분열과 적대가 나라를 두동강낼 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민은 없고 지지자들만 있으며, 국익은 사라진 채 집단 이기주의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자기 진영만 챙기고 상대방은 무조건 배척하는 몰상식과 비합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력들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게 중도층 부활의 배경인 것이다.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유권자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이념대결에 치여 찢기고 상처난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중도의 부활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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