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김창식 충북과학고 교사

누군가 내게 '어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반문할 것이다. 읽던 책을 젖먹이 아기처럼 가슴에 안고 골똘한 생각에 잠긴, 시간이 정지한 고요의 공간을 만들어내듯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라고.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슐리만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헥토르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선물한 동화책 '어린이를 위한 역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트로이성이 불타 없어졌다는 내용을 읽었다. 어른이 되면 트로이 성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발굴 자금 마련을 위해 갖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마지막으로 그리스어를 배웠다. 그리스와 주변 나라의 역사 공부도 했다. 그리스어를 맨 나중에 배운 이유는 트로이성을 찾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전에는 발굴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무역회사 사장으로 부자가 된 그는 그리스 일대를 탐사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관련된 유적을 탐구했다. 히실리크 언덕을 발굴해 그것이 트로이 유적이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또한 그리스 아르고리스만 기슭의 미케네 고분을 발굴해 크레타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문명의 계통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 어린시절 읽은 한 권의 책이 심어준 집념과 의지의 결과였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 떨어져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末路) / 내 아는 사람에게/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이기철의 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의 뒷부분이다. 떨어지는 꽃처럼 겸손하고 향기롭게 하루를 마감하고 싶다는 맑은 심정이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시를 읽는 사람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이런 시를 즐거이 암송하는 여인과 사랑해보고 싶지 않은가? 상춧잎 같은 편지를 받아보고 싶지 않은가? 나는 그러고 싶다. 독서는 사람과 사회를 아름답게 한다.

이 한 편의 시는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행복 비타민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

한하운 시, '전라도 길'의 뒷부분이다. 나병으로 온몸이 뭉그러진 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붉은 황톳길을 걷고 있는 나환자. 보는 이마다 외면하고 손가락질해대며 돌까지 던지는 사람들의 냉대와 핍박을 받으며 힘들게 걷는 나병 환자의 처절한 고난을 읽고도 자신의 삶이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낙담과 좌절을 희망과 용기로 치유해 줄 것이다.

김창식 충북과학고 교사

어느덧 12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다. 돌이켜보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나는 왜 소설 속에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외면하고 어둡고 슬프고 힘겨운 삶을 그렸을까. 이제부터 소설을 쓴다면 밝고 기쁘고 저절로 가슴이 뿌듯해지는 그런 사랑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행복 비타민이 가득한 소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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