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걸재 집터다지기 보존회 회장

'대나무는 그림자로 마당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달이 연못에 빠져도 물결이 일지 않는다.'

'내 곡성이 아무리 크다 한들 천 번을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는 내 친구의 아픈 마음만 하겠는가.'

'평생을 금강물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 오셨으니 금강물이 마르지 않는데 어찌 당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위에 적은 문장은 우리의 전통 상례 풍습중의 하나인 만장(輓章)에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적었던 문장들이다.

그리고 많은 문장 중에서 우리고장 공주에 살던 선비님들이 좋아하여 즐겨 쓰시던 문장들이다.

자신의 벗이 세상을 하직하던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오색 천을 잘라 돌아가신 분의 일생을 추모하는 글이나 살아생전의 업적이나 칭송 글을 시의 형식을 취해 쓰던지 산문체로 글을 지었다.

그 글을 정성들여 붓으로 쓴 글을 들고 문상을 가면 유족들에게는 어떤 위안보다 큰 것으로 알았고, 상제는 이 글을 받아 깃발처럼 대나무에 매달아 상여 앞에 세웠다.

덕이 높고 인품이 훌륭한 분이 사망하면 한 장 한 장 깃발에 매달아 세우기 힘들어 앞에 몇 장만 깃발에 매달고 나머지는 장대에 빨래를 걸 듯이 매달기도 하였고, 그러한 집에서는 그 글들을 모아 문집을 낼 때 기록하기도 하였다.

만장으로 높은 칭송을 받은 것은 당신만의 자랑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집안의 자랑일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만장이 얼마나 걸리느냐? 또는 어떤 칭송을 받느냐의 문제는 고인이 살아 온 덕의 상징이었다.

이런 절차로 장례를 치르고 나면 상제들은 만장을 모은다. 그리고 1년 상이나 3년 상 동안 대청에 모셔두는 상청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소상 대상을 치르고 상청이 나가고 나가는 날 소지를 올리는 마음으로 만장을 불사르며 경건 한 마음으로 부모님의 일생을 돌이켜 생각하며 자신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 갈 것을 다짐했다.

그랬다. 만장은 많은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정성과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문상품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선비들에게는 마음으로 슬픔을 전했던 약속이요, 돌아가신 분에게는 만장의 수가 곳 생전에 쌓은 덕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던 풍습이다.

그런데 이제는 만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허례허식을 일소한다고 강제로 없앤 이후에는 만장이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 것인지를 확인 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청첩장이나 부고가 고지서가 되어 버려 사람은 가지 못해도 봉투는 보내야 하는 지금의 각박해지는 관혼상제에 대한 인식을 생각할 때, 마음으로 보내는 만장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한자로 지어 지는 문장이 아니라 한글로 써지는 만장의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걸재 집터다지기 보존회 회장
이걸재 집터다지기 보존회 회장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최고였던 상부 상조의 전통, 그 중에서도 상례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아픔을 마음으로 달래는 양속 중의 양속으로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지켜온 맑고 해박하며 정성이 깃든 전통이기에 이제는 돈 봉투 고지서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길을 모색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만장의 문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선비의 정신이 잘 배여있는 문화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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