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세계화 4.0'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새로운 지구촌을 지배하는 사회구조로 4.0 세계화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일차원적으로 출발한 세계화가 인공지능, 모든 사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loT), 가상화폐 등 다차원적인 세상으로 빠르게 진화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준다.

제네바 외교개발대학원 리처드 볼드윈 교수에 의하면, 1.0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화다. 하지만 이 시기는 대공황,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2.0은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주도적으로 이끈 세계화다. 3.0은 기업이 이끌었고 저렴한 생산비를 찾아 국제적으로 이동이 활발했던 세계화다. 현재는 글로벌 프리랜싱, 플랫폼, 첨단 통신기술, 컴퓨터에 의한 통역 등 각종 디지털 기술 발달로 지리적인 한계가 사라지는 세계화 4.0시대다. 에어비엔비,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가상의 플랫폼 상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기술지향적으로 진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소외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세계화의 마지막에는 '사람', 즉 개개인의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일까. 세계적인 뇌 연구자 매리언 울프의 지적은 의미가 크다. 순간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가 인류의 가장 기적적인 발명품인 '독서(reading)'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는 점에서다.

미국의 법학자 마사 누스바움에 의하면, 자유와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되려면 개개인이 '사랑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이 사라져 버린 현대사회에서 문학이 '시민종교'로서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학은 더욱 그렇다. 철학이 외적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권유한다면, 문학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면서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학을 읽는 것은 개인의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오고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달리하는데 영향을 준다. 실제로 인지심리학자 레이먼드 마와 키스 오틀리의 연구에 의하면, 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감정상태가 다르다. 자주 읽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에 쉽게 공명하며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줄 안다.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많이 읽은 아이일수록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등 사회성이 좋아진다. 즉 읽기를 통해 괜찮은 시민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과 정보에 능한 전문가만 있고 문학을 읽는 시민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사회는 사익 추구의 검투장이 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많은 철학자, 사상가들도 모두 문학에 심취했다. 공동체에는 반드시 우애와 같은 공적 감정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사회의 질적 수준이 달라진다. 이기(利己)적 존재인 인간을 이타(利他)적 존재로 바꾸는 힘이 문학에 있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하루하루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살다보면 살면 삶은 길을 잃는다. 삶에는 정법이 없고 사회엔 정해진 모양이 없지만, 항상 그런 생각으로 허무와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찾는 인간의 행동을 촉진시키는 일이다. 또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언어를 수용하고, 낯선 감정을 습득하는 일이다. 미국의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처럼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비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의 피부, 다른 사람의 목소리, 다른 사람의 영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개인이 파편화되어가는 세계화 4.0시대에 독서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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