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전략 없이 "막겠다" 감성 대응

청주시청사 전경.
청주시청사 전경.

[중부매일 박재원 기자]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동의로 진일보한 오창읍 후기리 소각장에 대한 청주시의 초기 대응이 안일할 정도로 여유로워 보인다.

적어도 주민들 사이에서 "청주시는 다 계획이 있구나" 정도의 말이 나와야 하는데, 세부 실행 계획도 없이 그냥 '어떻게든 막겠다'는 감성 전략만 펴고 있어서다.

시는 이에스지청원의 후기리 소각장 조건부 동의가 나온 하루 뒤인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소각장 신·증설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스지청원이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소각장 건립 사업계획 적합통보를 받아도 도시계획시설 입안 거부 등 행정 재량권을 발동해 차단하겠다고 했다.

한범덕 시장이 지난 11월 6일 발표했던 추상적인 방침에서 추가되거나, 새로운 내용이 없는 복사본이다.

당시와 똑같이 행정 재량권 동원으로 제기될 각종 소송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소송을 감수하겠다는 청주시의 세부전략은 찾아보기 힘들다.

후기리 소각장 문제의 핵심은 바로 소송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소각장 건립 여부가 판가름 나고 자칫하면 엄청난 손해배상을 시민들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최악이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지금부터 불허처분 명분과 근거를 모아놔야 하는 데 시는 이에스지청원이 도시계획시설 입안제안이 들어오면 그때 준비하겠다며 여유로운 분위기다.

닥치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행정청의 고질적인 안일함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다행히 청주와 비슷한 폐기물처리시설 소송에서 자치단체가 승소한 경우가 더러 있다.

금산군(2019년 2월 확정)과 상주시(2010년 2월 확정)가 대표적이다.

이 두 자치단체 모두 의료폐기물 처리 업체가 제기한 '도시관리계획시설 입안제안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업체가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한 사례로 앞으로 청주시가 겪어야 할 상황이다.

관련 법리를 제하고 이 두 행정소송 판결문을 분석하면 법원은 공통적으로 폐기물처리시설 건립에 따른 환경상·생활상 이익의 침해 가능성과 공익상 필요 정도, 사익침해 정도, 주민·의회·도시계획위원회 자문 결과의 의미 등을 따졌다.

법원 판단의 잣대가 되는 이 상황적 자료는 소송 피고인 해당 자치단체에서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청주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다.

이 중 환경·생활상 이익 침해 정도와 소각시설의 대기오염방지시설 효과 등은 전문기관에서 수행한 공신력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금산군이 전문 업체에 사업 예정지 주변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의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용역에는 사업 예정지 주변 생물다양성, 지하수·토양 오염 가능성, 다이옥신 낙진, 주변지역 특산물 생산 현황 등이 담겼다. 여기에 사업예정지 재해 위험성과 폐기물운반 차량 교통사고 위험 등 디테일한 내용도 포함됐다.

청주시가 현재 수행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불허 처분 명분으로 사용할 후기리 정밀 분석 자료를 미리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이유는 또 있다. 이에스지청원이 사업계획 적합통보를 받은 뒤 현재와 같이 주민은 물론 청주시가 신경을 곤두세운 상황에서 도시계획시설 입안제안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기약은 없으나 1년 후 또는 지방선거가 임박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탈 수 있다. 해당 부서 담당자가 인사이동으로 바뀌거나, 선거로 시장 업무대행체제로 전환되는 시기를 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인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모르긴 몰라도 담당 부서는 개념 정리하는 데만 수일을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소각장 건립에 긍정적인 시장이나 의원들이 집행부와 의회를 장악하면 후기리 소각장 문제는 새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후기리 소각장 건립이 '절대 불가'라는 매뉴얼 형식의 근거를 만들어 명문화시켜야 하는 이유다.

최종적으로는 승소했으나 금산군과 상주시가 1심에 모두 패한 이유가 청주시처럼 안일하게 대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용역을 추진할 수도 있으나 아직 사업계획 적합통보도 나질 않은 상황에서 너무 앞서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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