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글로벌 시대, 국내외 문턱이 사라지다시피한 오늘을 살다보니 해외에서의 일이 곧바로 우리의 삶에 직결되곤 한다. 이를 보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세계 무대가 별다른 걸림돌 없이 우리 앞에 열려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우리의 잣대가 세계의 잣대가 되기도 하고, 존재 여부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된 파장이 대한민국을 뒤덮기도 한다. 올해로 101살이 된 한국영화가 2020년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 영화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오스카상의 백미인 작품상을 비롯해 4개의 트로피를 한국인이 차지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개 부문을 석권한 이 상은 사실 철저하게 미국의 잣대가 적용되는 미국인의 무대다.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관련 상이지만 미국 그것도 LA(로스앤젤레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만의 투표로 선정된다. 올해 92회째를 맞았지만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비 영어권 감독상 수상도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미국과 영어라는 철옹성이 이제야 뚫린 것이다. 그것을 한국영화, 한국인이 해낸 것이다.

더구나 이 상은 상업성을 기반으로 한다. 미국 영화나 미국에서 일정 기준이상 개봉한 영화만을 대상으로 한다. 작품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유럽쪽 상과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기생충'은 이미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사상 2번째로 칸과 아카데미(오스카상)를 동시에 거머쥔 영화가 됐다.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 만큼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전세계에 떨친 이번 수상에 대해 국민 누구나 뜨거운 박수와 축하를 보낼 것이다. 또한 한국영화와 영화계 발전에 커다란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기생충'은 이미 상업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전세계의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부의 양극화 문제를 효과적이고 강렬하게 다뤘다는 평가와 함께 말이다. 이는 나라간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에 우리문화, 우리 정서가 세계에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세계공통 장르인 팝에서 우리의 'BTS(방탄소년단)'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도 같은 맥락이다. 5천년 문화민족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일제의 압박과 국가 존폐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 기반을 갖추는데 온힘을 쏟아야 했던 시간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없이 가지고 싶어 했던 높은 문화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됐다. 영화와 팝을 넘어서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그 문을 열어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무대를 두드리고 결실을 내기 위해서는 도전과 함께 문화의 저력을 더 다져야 한다. 문화산업에 대한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보다 전향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 지역이 빠질 수는 없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당장 주변에서 풀고 도울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이 열린 만큼 먼저 길을 떠냐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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