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을때 미국에선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가 뜨거운 이슈를 생산해냈다. 부조리한 사회 환경이 만든 악당 조커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도덕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의 희생자였다. 악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독버섯처럼 자랄 수밖에 없다. 불우한 가정, 직장내 처우, 궁핍한 생활, 고질적인 질환 여기에 양극화 현상과 가진 자, 배운 자들의 위선과 조롱등이 겹쳐져 극단적인 악마성을 키웠다.

조커가 '기생충'과 비교되는 것도 사회적 모순과 계층간 차별이 폭력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사회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안정된 경제 기반속에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동체윤리 의식이 무너진 삭막하고 차가운 사회에선 비극을 잉태한다. 기생충이 올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거머 쥔 기적을 일구어낸것은 글로벌 사회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을 의미하는 패러사이트( parasite)는 그리스어 parasitos에서 나온 말로 원래 '식객'을 뜻했다. 일본에선 '패러사이트족'이라는 조어가 있었다. 기껏 뼈 빠지게 벌어 대학을 졸업시켰지만 알바로 용돈이나 벌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무능력한 20대를 지칭했다. 요즘엔 우리나라에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에선 온 가족이 패러사이트족이다. 의지하는 대상은 보통부자가 아니라 IT로 거부가 된 '슈퍼리치'다.

한국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 확대되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부의 편중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지만 우리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부자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간 양극화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는 현상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감소하는 중산층은 대부분 살림이 팍팍한 서민층으로 전락해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양극화 구조가 된다.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을 흔히 '20대80의 사회'라고 한다. 이는 부자 20%와 빈자 80%를 의미하는 말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대다수가 서민층 내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중산층이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침체된 주택경기에 갇혀 한계상황에 달하면서 점차 아랫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영화속 박 사장 가족은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처럼 아름답고 럭셔리한 저택에서 살고있지만 기택네 가족은 계층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취객이 노상방뇨하는 것을 집안 창문밖으로 지켜볼 수 있고 장마철이면 물난리를 겪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반지하방은 가족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가족이지만 사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기우(아들)가 위조한 명문대 졸업장을 기택에게 보여주면서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대사는 조국 딸 입시비리에 패러디되며 역설적으로 상류층 윤리의식의 부재를 드러냈다.

'기생충'이 코믹으로 시작해 공포스럽게 파국을 맞고 비극으로 끝난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심리적인 박탈감도 커진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기우의 로망은 언젠가 성공해 슈퍼리치 박 사장의 '캐슬'에서 아빠와 해후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엄마와 함께 단란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들어 권부의 실세들이 권력에 기생해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열린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박 사장 표현대로 하면 선을 한참 넘는 비현실적인 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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