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동양어대학 대학언어문명도서관에 소장중인 무예제보
프랑스 동양어대학 대학언어문명도서관에 소장중인 무예제보

조선의 병서(兵書)에는 무과시험의 주요 교재였던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비롯해 다양한 무예서가 존재했다. 이 중에서 무예서에는 조선 선조대의 '무예제보', 광해군대의 '무예제보번역속집', 영조대 사도세자에 의해 편찬된 '무예신보',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 등 4차례의 무예서 편찬은 조선의 대외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 무예서들은 국왕의 지원이나 주도로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정조때는 동북아 무예의 종합서로 세계에서 인정하는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으며, 2017년 북한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임금이 압록강까지 피난을 가서야 조선의 선조는 군사병법과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비(武備)에 힘쓰게 되었다. 명나라의 원병이 사용했던 척계광의 병법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효신서를 입수하고, 그 기예를 조선군에게 훈련시켰다. 그리고 명나라와 조선이 연합군이 되어 왜구를 물리치고 1598년 한교(韓嶠, 1556-1627)는 기효신서에서 곤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 등 단병 무예 6가지를 선정해 해설하고 한글로 번역해 간행한 것이 무예제보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전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당시 조선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무예를 누구나 쉽게 익히기 위해 한글 번역을 병행한 것이다.

무예제보는 원래 무예관련서적이나 고어사전을 통해 서명만 알려져 있다가 1994년 강원대 박기동 교수에 의해 소장처가 처음 확인되었다. 원본은 프랑스 파리의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982년 한불협정에 따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여 전해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숙종시대에 재간행된 판본이다. 1598년 초간본인 무예제보는 2017년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것이 국내 최초의 원본이다. 이 원본은 개인소장자가 가보로 여기던 것을 수원화성박물관이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본으로 판단하고 매입해 공개되었다.

무예제보번역속집(보물 제1321호)
무예제보번역속집(보물 제1321호)

무예제보는 조선 최초의 한글 무예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용양위(龍?衛) 사정(司正)의 관직에 있던 한교(韓嶠)가 만력 26년(1598년) 10월에 번역을 완료한 것이다. 간행 시점은 적혀 있지 않으나 당시 시대적인 상황이 긴급하게 필요에 의해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604년 '무예제보속집'과 1610년의 '무예제보번역속집'으로 이어진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은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88년 언어학자인 대구카톨릭대 김동소 교수에 의해 서명이 등재되었고, 1999년 대구대 김영일 교수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무예제보의 속편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실제 이 책은 각종 병서가 활발하게 정리되던 18세기말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특히 무예도보통지의 인용서목 145종에도 포함된 사실이 없었다.

무예제보가 임진왜란시기에 중국 기효신서의 주요 단병기를 익히기 위해 급조된 것이라면, 무예제보번역속집은 전쟁 경험에 대한 반성이 어느 정도 축적된 이후에 1610년 훈련도감의 도청 최기남에 의해 무예제보를 보충하여 만든 것이다. 원래 무예제보에서 빠진 것을 보충하여 속집을 편찬케 한 것은 선조였다. 그러나 그는 간행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광해군은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속집 간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집필과정에서 일본고(日本考) 4권을 얻어와 그 가운데 일본의 지지(地志), 토속(土俗), 구술(寇術), 검제(劍制)를 선별해 책 뒷부분에 보충하였다. 또한 명나라가 기울어지자 새롭게 부상한 후금(後金)이 조선에게는 큰 위협의 대상이었다. 후금은 기마전술이 뛰어나 이를 대비하기 위해 청룡언월도, 협도곤, 구창, 왜검 등의 기예도 도입했다. 이처럼 무예제보번역속집은 광해군이 기존 무예제보와 더불어 후금을 대비한 기예들을 포함시켜 편찬한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인조반정을 통해 강제 퇴위가 이루어지면서 이 무예서는 공식 무예서로 전해지지 못했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무비정책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무예제보와 무예제보번역속집은 초기 무예이자, 조선 중기 무예와 병법, 그리고 17세기 초기의 국어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그 후 무예신보에 이어 무예도보통지까지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경기도 수원시가 중심이 되어 2018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을 하였고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곧바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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