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때 '누구나 다 아는 비밀'이었다가 철퇴를 맞은 의약품 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 기사를 통해 밝혀진 국내 유명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실태를 보면 책임자격인 제약회사는 뒤로 빠지고 대리인격인 영업대행사가 나서서 사건이 이뤄졌다. 확인된 리베이트 대상도 병·의원 및 협회 10여곳에 약국 10여 곳 등으로 적지 않다. 더구나 해당 자료는 제보자 한명이 자신과 관련된 것들만 정리한 것인 만큼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수사 성과에 따라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리베이트에 연루된 병·의원, 약국 등의 수도 상당하지만 이들에 대한 개별 리베이트 금액 또한 만만치 않다. 한 의원의 경우 2천500여만원 처방전 매출로 발생된 리베이트가 500만원이 넘는다. 자료에 드러난 병·의원은 거의 대부분이 매출액의 20% 가량을 뒷돈으로 받았다. 금액으로 따지면 보통 250여만원을 웃도는 규모다. 약국들은 상대적으로 비율과 규모가 작았지만 한달에 수십만원씩 현찰을 받은 것으로 기록됐다. 이처럼 리베이트들이 쌓이다보니 문제가 된 영업대행사에서 제보자 한명이 7개월간 전달한 금액만 2억2천여만원에 달했다.

게다가 이번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폭로한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일들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문제가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업대행사에서 리베이트 비용을 만드는 과정 전반에 제약회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역할을 보면 리베이트란 불법행위에 단순히 관련된 정도가 아니라 불법을 조장한 것과 다름없다. 영업대행사와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할인해 대금의 일부를 반환하는 방식으로 뒷거래를 해 왔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렇게 전달된 돈이 병·의원이나 약국 등에 건네는 리베이트가 되고 해당 제약회사 약품의 매출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같은 의약품 리베이트는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 먼저 약품 출시때부터 리베이트 비용이 감안된 금액으로 가격이 책정될 수 밖에 없다. 실제 적정 가격에 리베이트 비율이 추가되는 만큼 소비자 주머니에서 부당한 돈이 나가게 된다. 국민의료보험을 통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시차를 두고 서민들이 내는 의료보험료에 반영될 뿐이다. 이 돈은 제약회사, 영업대행사, 병·의원 또는 약국 등이 나눠 갖게 된다. 더구나 이같은 공급구조가 굳어지면 리베이트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면서 시장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의약품 시장이 성능이나 효능이 아닌 리베이트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다. 약을 사는 것은 소비자이지만 선택권이 없어 병·의원, 약국의 결정이 절대적이다. 이같은 맹점을 얄팍하고 무책임한 상술이 파고든 것이다. 건강과 안전, 치료 외에는 그 어떤 잣대로 개입돼서는 안될 영역이 의약품 시장이다. 마땅히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해 잘못을 엄단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손을 봐야 한다. 거듭된 적발과 처벌에도 살아남은 것이 솜방망이 때문이라면 이제라도 그 강도를 높여 반드시 근절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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