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외길 아버지 경험 녹여 문화재 기술자 도전하고파"

무형문화재 홍종진 배첩장(좌)과 한국 전통 배첩으로 1호 박사학위를 받는 그의 아들 홍순천 박사(우). / 이지효
무형문화재 홍종진 배첩장(좌)과 한국 전통 배첩으로 1호 박사학위를 받는 그의 아들 홍순천 박사(우).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무형문화재 아버지 뒤를 이어 한국 전통 배첩을 공부한 아들이 국내 1호 박사가 됐다.

홍순천(43)씨는 '한국 전통 배첩에 관한 연구'로 21일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홍 박사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褙貼匠)'인 홍종진(71)씨의 아들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배첩장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실질적 기술과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으며 한국 전통 배첩에 대한 이론과 기능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배첩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액자, 병풍, 족자, 장정, 고서화 등으로 처리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기술이다.

배첩일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디자인적 색감 배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목재도 다룰줄 알아야 한다. 종이는 물론 그림, 글씨까지 등 다양한 재주가 있어야 가능하다.

16세부터 배첩을 배워 무형문화재 반열에 오른 홍종진 배첩장은 5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아들 홍 박사는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공방에서 뛰어 놀았고, 어깨 넘어로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는 정도였다.

3남매를 둔 홍 배첩장은 그중에서 유난히 어려서부터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하던 홍 박사에게 배첩을 배우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홍 박사는 2000년부터 배첩일을 배워 2004년 배첩 이수증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대학 학부생이었다. 청주대학교 지적학과를 나온 홍 박사는 2005년 지적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4년 청주시 봉명동에 건립된 청주배첩전수교육관 관장을 맡은 홍 배첩장은 아들이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전통문화 연수원 문화재수리 양성과정 코스를 밟으면 어떻겠냐'는 마음을 내비쳤다.

아버지 말을 귀담아 들은 홍 박사는 고민을 거듭하다 취업 1년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그 이듬해 결국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2년 과정을 배운 후 2009년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석사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석사 시절 조선왕조실록 밀납본 복원사업에 참여하면서 기능적인 부분과 학문적인 부분에 대한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런 와중에 학자들이 장인들을 은연중에 경시하는 것도 홍 박사가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배첩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홍 배첩장은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 아들이 대를 이어 배첩을 배우고 또한 국내 1호 박사가 돼 제가 박사학위 받은 것보다 훨씬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 배첩장은 아들에게 일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엄격하기 그지 없다.

무형문화재 홍종진 배첩장(좌)과 한국 전통 배첩으로 1호 박사학위를 받는 아들 홍순천 박사(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 이지효
무형문화재 홍종진 배첩장(좌)과 한국 전통 배첩으로 1호 박사학위를 받는 아들 홍순천 박사(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 이지효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표현을 잘 하지 않아 아들이 서운할 수도 있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저에겐 아직 어린애 같고 미흡해 보이기 때문이죠. 잘하고 있지만 너무 잘 한다고 하면 자만할까봐 잘 표현 하진 않지만, 우리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홍 박사는 현재 청주배첩전수교육관에서 충북 무형문화재 배첩장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

홍 박사는 "힘든 시기도 있지만 50년 넘게 한가지 일에 매진하셔서 장인 반열에 오르신 아버지가 무척 존경스럽다"며 "앞으로 문화재수리 기술자에 도전해 전수관과 연계해 문화재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배첩 전수 교육과 문화재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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