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활동하고 있는 밴드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아침 기상 시간에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확인한 글은 '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로 시작되었다.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 글을 읽으면서도 잠이 덜 깨어서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글을 올린 회원의 댓글을 보고서야 우한 바이러스를 알리다가 중국 공안의 훈계를 받은 뒤 감염으로 죽은 의사 리원량의 유서임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통증과 슬픔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다'는 댓글을 보면서 나도 먹먹한 마음이었다. 특히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가 태어나서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절절한 슬픔으로 다가오던지….

어린 자식들을 두고 먼저 가는 젊은 아버지의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이제야 중국 우한의 당서기가 신종 폐렴 발병을 제때 알리지 않았음을 후회했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후회다.

옛말에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고 했다. 그래야 약이 먼 데서도 듣고 처방하러 온다는 뜻으로 널리 알려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역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공식적인 행사 말고도 친구, 지인들 간의 식사도 될 수 있으면 자중하는 분위기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의 정이 한 끼 식사로 더 돈독해지기 마련인데 조심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식당도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루빨리 이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얼마 전에 퇴원한 지인과 '행복한 우동가게'에서 식사 시간을 가졌다. 이 가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시인이 되어 적은 짧은 글들이 벽면 가득 붙어있다. 많은 글귀들 속에서 슬프게 몸부림치는 글귀가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죽을 것 같다. 살고 싶다.' 꾹꾹 눌러쓴 한 글자 한 글자는 지인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가, 언제, 무슨 사연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에게는 지금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힘내'라는 말은 어떤 에너지가 주어지면 더 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격려에서 들려주는 말이다. 그 정도에 반응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닌 것 같아서 더 신경이 쓰였다. 지인은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이렇게 썼다.

'내가 가보지 않은 시간 같아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그 말이 또 다른 위로가 되었기를 소망해 보며 리원량의 죽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거나 좌절과 상실 등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괜찮아?'라고 물으면 대부분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괜찮기를 바라는 또 다른 위로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래스는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어디선가 본 이 글을 보내고 싶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