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공존
경쟁과 공존
  • 중부매일
  • 승인 2020.02.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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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 최원영 세광고등학교 교장

2월은 졸업의 달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1월 초에 졸업식을 갖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고등학교나 대학은 아직까지 2월 졸업이 대부분이다. 올해의 졸업식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정상적인 모습은 갖추지 못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졸업식은 치르는 분위기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졸업식은 꼭 치러야할 의식이라는 것이 사회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태가 바뀌는 만큼 졸업식장의 풍경도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이전만 하더라도 헤어지는 슬픔과 아쉬움에 졸업식장이 눈물바다가 되고, 그런 가운데서도 어려운 학업과정을 마쳤다는 데 대한 긍지의 기쁨도 넘쳐났다. 박완서 선생이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있고 싶어서 우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절묘하게 묘사했던 복합적 감정이 이를 대변하는 정서가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졸업식 모습은 인간적 감정이 애틋이 드러나던 예전과는 달리 무덤덤하거나 아니면 불안한 표정들이 학생들에게 역력히 드러나는 것이다. 졸업하는 학생은 물론 부모와 교사까지 그러한 표정이 묻어난다.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보람과 기쁨을 공유하기 보다는 또 다른 경쟁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불안과 근심이 담겨있다. 학점경쟁, 취업경쟁으로 대변되는 치열한 현장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0대는 입시경쟁으로, 20대는 취업경쟁으로, 30대는 승진경쟁으로, 40대는 다시 자식들의 교육경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허덕일 자신들의 미래 자화상을 보며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졸업식장을 나서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더욱이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다수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90%가 넘은 직업인들이 불안정한 노동자 즉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견도 졸업식장 문밖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경쟁의 치열함은 특히 한국사회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2018년 기준 한국 청소년들의 행복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추락했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현실의 경쟁이 힘들어도 밝은 미래가 보이면 이를 감당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그 고통을 더욱 심화시킨다. 기성세대들이 내가 경험해보니 '불가능은 없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할 있다'라는 "나 때는 말이야" 식의 '라떼'식 긍정과잉의 요구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희망 고문일 뿐이다.

존 쿳싱은 '경쟁은 전쟁의 순화된 대체재'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쟁은 우리 사회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삶을 파괴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타자를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고 적대적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공동체의 붕괴는 구성원이 서로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경쟁자로 대상화될 때 시작된다. 경쟁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존중받을 수 없는 존재로 전락되고, 사회적 품격과 가치는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공동체의 튼튼한 그물망이 될 사회적 연대는 꿈을 꿀 수도 없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인간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바탕 하에 공정하고 건강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게 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불확실한 미래에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확실한 청사진을 설계하고 마련해줄 의무가 우리 기성세대 모두에게 있다. 타자를 경쟁의 대상자가 아닌, 함께 해야 할 공존의 동반자로 존중하고 배려할 때 공동체의 희망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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