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기는 감정 표현하는 몸의 연장"… 소리에 삶을 담아내다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화합을 위해 단원과 곡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 악장이 청주예술의전당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이지효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화합을 위해 단원과 곡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 악장이 청주예술의전당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교향악단 단원들이 모두 나오고 지휘자가 나오기 전 제일 마지막에 등장해 연주를 할 수 있는 준비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세번째 예술인터뷰 주인공은 유진섭(50)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이다. 유 악장은 가장 안정적인 톤을 가진 오보에 소리에 맞춰 A현(라 음)으로 금관과 목관 악기, 현악기 순으로 음정을 맞춰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 위한 세팅을 마친다. 유 악장을 만나 악장의 역할과 그의 음악세계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은 1971년 대전 선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악 전공 소프라노 어머니와 경영대 출신이지만 클래식을 사랑한 아버지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났다.

유 악장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7세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8세가 되던 해 당시 서울시향 단원에게 레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 자리에서 악기를 받고 바이올린이라는 신세계로 들어오게 됐다.

악기를 시작하고 대전에서 콩쿠르에 나가면 1~2위는 유 악장의 몫이었다. 자신감도 충만했었다. 이런 기세로 4학년때 서울 콩쿠르에 참가하게 됐다. 그러나 큰 무대여서 그런지 입상은 커녕 처음 좌절감을 맛봤다.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 유진섭 악장 제공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 유진섭 악장 제공

"무대에 올라 실수로 망치면 다시 그 실수를 만회하고 싶고, 내가 연습한 것이 잘 표현되면 그보다 벅찬게 없더라구요. 그게 바로 바이올린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유 악장은 "저도 최근에 느꼈지만 무대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군인이 전쟁터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것 같다"며 "그렇지만 그 긴장감을 극복하면 극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악장은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본격적인 예술가 코스를 밟았다. 예원중에 이어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5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한 유 악장은 유학 시절이 거의 '충격'이었다고 했다. 서양음악의 본고장을 가니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배웠던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음악 전반에 대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눈앞에 있는 경쟁에 혈안이 돼 있는데 독일은 음악에 대해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언어는 물론 그 당시 시대 상황, 건축, 사회 분위기, 미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유 악장은 "처음에는 연주하는데 이런게 왜 필요한가? 싶다가도 그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음악 외에도 그 시대 상황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레슨때 인상파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던 선생님의 질문에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 몇개만을 이야기했다던 유 악장. 그가 들은 말은 "미술관부터 다녀와라"였다.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죠. 한 음악가를 둘러싼 이야기와 그 뒷 이야기를 듣고 모든 시대상황을 이해해야 한 음악가의 음악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이런식으로 공부하면 정말 재미있겠다 싶었죠."

유학중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2002년 귀국 독주회를 열었다. 이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부악장,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및 충남도립교향악단 악장을 역임했다. 2016년 청주시향 악장으로 오게 되면서부터 청주시향 단원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휘자의 가장 지근거리에서 오케스트라의 화합을 위해 곡을 이끌어가고, 때로는 솔로 연주 역할을 해야하는 유 악장.

청주시립교향악단 유진섭(좌) 악장과 김근화 수석이 연주하고 있다. / 청주시 제공
청주시립교향악단 유진섭(좌) 악장과 김근화 수석이 연주하고 있다. / 청주시 제공

"오케스트라의 매력이 바로 그것 같아요. 연습할 때는 어떤 부분이 잘 맞지 않다가도 한마음으로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끌어 낼 때면 그동안 있었던 스트레스도 모두 해소 되는 것 같거든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었던 그는 "음악은 내 감정을 표현해내는 몸의 연장이며 분신"이라고 말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악기를 통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악기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압니다. 악기 주인의 말투와 악기 소리가 똑같거든요. 그사람이 말하는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을 좋아한다는 유 악장. 그는 "베토벤은 교향악의 토대를 마련한 음악사적인 업적외에 인간적으로 그의 삶이 고되고 병들고 어려운 와중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아름다운 곡들을 완성해 나간 그의 열정에 너무나도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 악장은 연주할 때 작곡가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이 연주하고 있다. / 유진섭 악장 제공
유진섭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이 연주하고 있다. / 유진섭 악장 제공

유 악장은 "순탄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가 없을 정도"라며 "저는 그런 작곡가의 곡을 바이올린을 통해 연주하고, 전체의 음악속에 바이올린이라는 일부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독주회 준비와 함께 지역에서 앙상블을 구성해 활동해 보고 싶다는 유 악장.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은 취소 됐지만 시향 단원들과의 아름다운 하모니 연습에 매진해 언제든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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