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세밑의 흰 밤이었다/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벙어리처럼 울었다//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 허은실, '이마' 중에서-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작가는 신열이 오르는 자신의 이마에 오른팔을 올리고 있다. 보호자 없이 혼자서 앓고 있는 서러운 모습이 내게도 전이되는 듯하다.

며칠째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딸아이의 이마를 짚어본다.

열은 없지만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왔지만, 그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편두통에 도움이 된다는 국화차와 초콜릿을 권해본다. 딸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편두통으로 늘 마음이 조심스럽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이마에 갖다 대면 어느새 통증이 가라앉으면서 편안해졌다. 굳은살이 박인 엄마의 손은 곧 체온계였다. 툭하면 38.5도를 넘기며 온 몸을 달구어 놓은 하얀 수은주가 엄마는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까, 신열이 내리지 않으면 엄마는 십 리 밖, 면 소재지에서 약국을 하는 외삼촌에게로 달려가셨다. 한참을 지나서야 허겁지겁 문을 열고 약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어머니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졌다. 쓰디쓴 약을 먹고 20여 분이 지나면 어느새 열은 가라앉았다. 어머니의 약손은 어린 딸의 이마 위에 늘 놓여있었다.

무거운 하루를 짊어지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마를 바라본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많은 생각과 계획, 행복과 고단함도 이마 위에 피고 진다. 하얗고 고운 이마는 자존심과 자존감, 감정의 변화에도 지배를 받는다. 머릿속에 풀지 못할 문제들이 쌓이면 자신도 모르게 찌푸리게 된다.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의 양면성을 대변하는 이마는 두 눈과 같이 거짓이 없다.

삶이란 희로애락이 교차하지만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노여움과 슬픔이 더 많은 게 보편적이다. 특히 요즘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주름진 이마를 보면 내 자신도 모르게 내 이마에 주름이 간다. 102년 전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고, 52년 전 홍콩 독감은 다음 해 초반까지 세계로 확산되면서 75만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 역시 날마다 발인 되는 것을 보면 이번에도 펜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마에 손이 올라간다. 몸도 아프고, 정신적 불안감과 경제 불황으로 위축된 우울감은 그늘진 이마에 빈혈을 앓는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 할 건 아니다. 지금껏 많은 홍역을 앓으며 살아온 우리다. 아무리 독한 감기라도 건강한 몸과 마음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이 재앙에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무량의 지혜가 있기에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할 것이다.

딸아이가 정상 컨디션을 찾고 밝아졌다. 다른 사람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 준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은 자신이 신열을 느낄 수 없다. 섬세한 아픔까지 누군가 관심 가져주고 위로와 격려가 있을 때 아픔도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삶에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니,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은 더 축복이다.

봄이 왔다. 달려온 봄은 먹구름을 물리치고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좋은 기운을 힘껏 밀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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