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일 칼럼] 최동일 논설실장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오스카상 4관왕에 빛나는 한국영화 '기생충'은 부의 양극화란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그런가하면 고전영화 '혹성탈출'의 새로운 시리즈 첫 편인 '진화의 시작'(2011)은 미래의 우리를 그렸는데 인류의 멸망이라는 발상은 끔찍하지만 지금도 참신하다. 이 영화에서 지구를 지배해 온 인류를 불과 수십년만에 끝장낸 재앙은 바로 감염병이다.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인해 인류의 대부분은 죽고 살아남은 소수도 '말'을 잃게 된다. 결국 감염병이 인류는 물론 문명까지 모두 삼켜버리면서 종말을 부른다.

감염병에 의한 인류멸망은 오래전부터 주장되어온 예견이다. 기업가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도 그랬고, 영국의 우주물리학자인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도 전염병과 자연재해를 인류멸망의 세가지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미 수년전 핵전쟁이 아닌 미생물로 수십억 인류가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빌 게이츠는 최근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심지어 그는 전염병과 맞서 싸울 군(軍)과 같은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할 정도다. 더구나 신종 전염병 창궐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는 이들도 적지않아 그 위험성은 더 커 보인다.

전염병에 의한 인류멸망 시나리오의 설득력은 역사적 사실들이 뒷받침 한다. 14세기 적어는 1억명 가량이 숨졌을 것으로 추산되는 페스트는 수만년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대표적인 전염병이었다. 16세기 스페인 군대가 남미대륙를 정복한 것은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도 있었지만 이들이 전파시킨 천연두로 인해 원주민 절반가량이 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세인 20세기초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도 1차 세계대전보다 많은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1800년대 조선에서도 대유행했던 콜레라는 당시에만 수차례에 걸쳐 전 인류를 공습했다.

이처럼 한번 시작되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판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은 최근 보건과 위생의 발달로 주춤하는 가 싶었지만 숨고르기였을 뿐이다. 21세기만 따져봐도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에 이어 이제 동북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까지 20여년 새 굵직한 것만 4건에 이른다. 사람의 손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보니 자연의 반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이들의 발생주기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망치고 있는 지구 생태계가 그 대가를 되돌려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문명의 발달과 맞물려 있다. 비행기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나라의 경계와 대륙간 거리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교류가 많아질수록 전파 속도와 범위 등 전염의 위험성은 커지게 된다. 글로벌시대 외국과 벽을 쌓고 살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지적으로 발생했어도 유행 가능성이 크다면 전 인류가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러다보니 빌 게이츠가 말한 '글로벌 전염병 대항군(軍)'이 현실화 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대응 방안에 귀가 솔깃한 것도 같은 이유다.

최동일 논설실장
최동일 논설실장

하지만 여기에는 인류의 명운이 걸려있다. 이 단계에 이르려면 짚고 넘어가고 풀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조속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감염병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으며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우려가 피부에 와닿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에 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기후변화의 정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고 병원체의 발생과 활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전염병은 그 위험성과 변화의 폭이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이미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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