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의미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보리밥, 따듯한 숭늉 한 그릇 소박한 상차림의 할머니보리밥집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골길을 달려 그 곳을 찾는 이들은 아마도 보리밥 속에 어머니의 손맛. 어린 시절의 향수를 함께 비비는 것이고, 그들 노부부는 오랜 세월 연륜의 정(情)을 양념으로 넣는 것이리라. 30초 광고 속에, 넘쳐나는 뉴스 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물건 속에 스토리가 있으면 상품이 되고 물건이 되듯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평생 살아오신 이야기를 구성진 창으로 구구절절 풀어내시던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살아 온 세월을 이야기 하자면 책 한권도 모자란다"고 늘 말씀하셨다. 아버님과 나무하러 산위에 올라 한 숨 쉬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무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어머니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운동장 조회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 같았다는 그것이 태몽(胎夢)이었다. 이 자식을 가르치면 크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소망이 되어 젖도 떼지 못한 막내둥이를 어린 딸에게 맡기고 곡식봇짐 이고지고, 동으로 서로 장터를 다니셨다. 없어서 너무 가난해서 온 몸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셨던 어머님의 삶은, 나의 가난 너의 가난이 아닌 우리시대의 가난을 온 몸으로 버티며 살아내신 것이다. 남편은 지금도 한 많은 보리고개 노래만 나와도 어머님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훔친다.

청갱이댁이라 불리던 어머니는 한씨 성을 가진 거침없고 강한 분이셨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사시던 시골집을 정리하고 큰 집으로 들어가신 어머님은 방학이 되면 막내인 우리 집으로 오셨다. 가끔 가까이 계시는 시누이 댁에 모시고 가면 함께 늙어가는 어머니와 딸은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모아 지나온 세월을 두런두런 나누며 다정한 시간을 보내시곤 하셨다. 따가운 햇살에 빠알갛게 가을이 익어가는 어느 날 쓰러지신 어머님은 그 해 겨울까지 일어나지 못하셨다. 우리 내외는 아침저녁 번갈아 가며 밥을 떠 드렸고, 출근 후에는 시누님이 오셔서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렸다.

큰아주버님이 어머님을 뵈러 오셨다 가시면서 "제수씨가 고생이 많네요"하실 때 "어머님 모신 복(福)은 제가 받을게요"라고 대답했다. "네 그러세요." 그 다음 주에는 둘째 아주버님이 다녀가시며 역시나 똑 같은 인사를 하셨고, 또 같은 답을 들었다. 형과 아내가 주고받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던지 순간 남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분명 나는 믿음의 고백을 했고 두 분 아주버님들을 통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성경 속의 인물 중 동생 야곱에게 장자(長子)의 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던 에서가 있다면 우리는 거저 받은 셈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어머님의 태몽(胎夢)은 붙들고 싶은 신앙 같은 것 이었다. 부모님 떠나가신 빈 둥지 고향동네 어귀와 초등학교 교문에 누구누구 아무개씨 아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가셨지만 아마도 어머님은 하늘나라에서 아들 등에 업혀 덩실덩실 춤을 추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아 퍼내고 퍼내도 차고 넘치게 끝없이 내리사랑으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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