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박채월 봉덕초 교사

'먼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좋으냐'고 물으면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그리고 잠시 머뭇거렸다가 이렇게 답하고 싶다. 자연환경은 그 때로, 문명의 기기들은 지금처럼….

산길을 걸어 오가던 학교길, 목이 마르면 망개나무 잎으로 고깔을 접어 졸졸 흐르는 물을 받아 마셨다. 소나기 내리는 빗속을 뛰어다녔고, 소담하게 내리던 눈을 받아먹으며 뛰어 놀았다. 그런 자연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언제 어디서나 물건을 구입·지불하고, 세계 이곳저곳의 아름다운 곳을 방안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세탁기와 청소기의 도움을 받고, GPS를 이용해 모르는 곳을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후배의 블로그에 올라온 영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를 보았다. 여운이 많이 남는 다큐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타자기를 수집해 판매하는 가게다. 지금도 그렇게 많은 타자기가 있는지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됐다. 타자기에는 발명에 대한 역사, 실용성, 설계 디자인에서 오는 아름다움 등이 묻어 있다는 것도.

나는 타자기를 잘 모른다. 배워본 적도 없고, 사용해 본 적도 없다. 하물며 실물을 보지 못했다. 가끔 영화에서 '탁탁탁' 치는 모습을 보았을 뿐. 그래서 타자기에 숨은 이야기들을 모른다. 컴퓨터 좌판에서 느끼는 가벼움과 타자기로 타이프 할 때의 금속성이 주는 온기를 비교할 수 없다. 아마도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와 전자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의 느낌과 비슷하리라는 추측을 한다. 전자는 묵직함을 느끼며 섬세한 손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느낌이 있다면, 키보드는 가벼운 터치에서 오는 소리의 느낌 정도. 타자기 마니아들이 빠져있는 기계 속의 신비로움, 이런 것들을 공감할 수 없다. 여기에 나는 기계치다.

빠르고 편리해서 효율적인 컴퓨터 워드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느리고 조심성 있게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한 쪽을 고집할 수는 없다. 자라나는 세대는 그들이 좋아 하는 것을 원할테고,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신기술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어느 쪽이든 지속가능한 것이길 바랄 뿐이다. 타자기로 작업한 것을 스캔해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그래서 옛 것을 신기술로 알리는 삶.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세상,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기술만 이용해 인간답게 남으려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과 기술로 유전자와 몸을 바꾸어 기계가 돼 영원히 사는 사람,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 이것이 내가 그리는 세상이다.

박채월 봉덕초 교사
박채월 봉덕초 교사

영화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 '우주에 의미는 없어요.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우리 임무라고요'. 코로나19로 신학기 시작도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이 때, 아이들에게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임무가 아닌가 한다. 아날로그가 됐든 디지털이 됐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길, 다수가 하지 않는 일을 찾아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타자기 마니아들처럼. 돈이 되든 되지 않든 심취(深趣)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길. 아날로그적인 삶도 디지털적인 삶도 자신이 선택해 가는 길, 어느 삶이 되든 타자를 건드리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이것이 남은 교직에 부여하는 내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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