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코로나19로 생긴 '사회적 거리'라는 낯선 단어가 부모도 형제도 이웃과 동료도 거리를 두고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힘겨운 시간들이다. 마치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국민행동수칙에 맞춰 집안에 머물면서 삶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있는 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문고리를 잡고 흔든다.

봄기운이 뜰 안에 심겨 있는 진달래를 깨우고 꽃봉오리가 봉곳이 부푼 입술을 내밀며 금방이라도 화사한 웃음을 흘릴 준비가 되어있다. 봄바람에 쥐어 박힌 매실나무도 기분 좋게 꽃눈을 틔워냈다.

꽃바람에 기분도 전환할 겸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추평저수지를 찾았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솔잎 양탄자가 깔려있는 저수지의 둘레길을 걸었다. 철새들도 쉬어가는 추평저수지에는 오리 떼가 자맥질하고 가마우치가 날쌘 사냥 실력을 자랑하고는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오른다.

때마침 물 위를 건너온 바람이 솔가지를 가볍게 흔들며 솔향기를 건네준다. 이 순간 오직 나만을 위한 공연을 보여주는 자연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임을 또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다음 시선이 멈춘 곳은 봄기운 잔뜩 머금은 버들강아지다.

갯버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버들강아지의 부드러운 솜털이 햇살 사이로 반짝인다.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버들강아지. 몇 년 만에 보게 된 은빛머리의 버들강아지가 마치 어린 시절 소꼽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포근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버들강아지는 혹시나 감기 걸릴까 염려스러워 두르고 나온 머플러의 질감처럼 부드럽다. 그러고 보니 내 머플러에도 '포근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코로나19가 성행하기 전, 초등학교 동창 보경, 정란, 의숙과 1박2일 시간을 함께 했다.

세 친구를 다 만난 적이 있는 나와는 달리 정란이와 의숙이는 보경이를 40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설레는 마음에 약속 전날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는 친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 끌어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40년의 세월, 함께 하지 못한 낯선 시간 속에서 어린 시절에 남아있는 모습을 찾느냐 부산스럽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삶의 굴곡과 세월을 견뎌온 나이테가 느껴지는 그녀들의 시선은 초등학교 시절에 멈춘 추억을 찾아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에도 열중이었다. 제법 나가는 밥값을 혼자 계산하는 멋진 모습을 보인 정란이와 함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속하지 않은 선물이 오고 갔다.

이 나이에 꼭 필요한 영양크림과 멋진 패션을 연출할 수 있는 쓰임새 좋은 머플러. 추억 소환을 위해 메밀전병과 메밀전에 곁들여진 불량식품 쫀드기 등을 펼쳐놓고 깔깔대며 공기놀이도 하였다. 마치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새벽 네 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었는지….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눈부시게 따뜻한 추억이 몽글몽글 버들강아지로 피어올랐다. 아직은 이른 봄이지만 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무엇일까? 새봄. 꽃봄. 늘봄. 바라봄 등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말은 '마주 봄'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보며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됐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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