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1995년 봉화산에 올랐던 추억.
1995년 봉화산에 올랐던 추억

시절이 수상하다. '코로나 19'는 신천지 바람을 타고 급격히 번져간다. 모든 일정이 정지되어 맥이 빠져 있던 차에 청주에서 시인 몇몇이 봉화산을 오르기로 했다는 기별이다. 진천 오는 길에 얼굴 한 번 보자며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 선뜻 집을 나섰다.

6·26 격전비 바로 옆 '잣고개 삼림욕장' 들머리에서 합류를 했다. 며칠 오락가락 꾸무럭거리던 날씨가 오늘따라 순하다. 햇빛도 밝고 바람결이 곱다. 산 오르기에 딱 좋은 기온이다. 마스크가 무에 필요한가. 슬그머니 벗어 주머니에 넣고 심호흡을 크게 하며 산행에 들었다.

왼쪽 옆 숲속 선녀탕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 나무꾼은 벌써 나무 한 단 지게에 쟁여놓고 선녀를 훔쳐보고 있다. 몸을 숨긴다고 쭈그려 앉았는가본데 잎 떨군 나무숲에 몸이 훤히 드러난 나무꾼의 모습이 우습다. '선녀와 나뭇꾼' 빤한 이야기가 판위에서 홀로 진지하게 서있다. 모범생이 따로 없다.

한편에서 지압길이 눈길을 주는 걸 신발 벗고 걷기가 귀찮아 모르는 척 지나쳤다. 들꽃단지에서는 꽃도 잎도 아무것도 없이 이름표만 덜렁 들고 서있는 표지판이 멋쩍은 듯 눈길을 피한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다시 한 번 오라는 것이리라. 8부 능선쯤 오르니 팔각정 하나가 잠깐 쉬어가라고 옷자락을 잡는다. 일행이 가져온 방울토마토 몇 알씩 먹으며 한숨 돌리니 바람 맛이 달게 와 닿는다.

곧이어 해발 413m 정상이다. 사방이 탁 트였다. 걸치고 있는 겉치레를 모두 벗어버린 나목이 시야를 넉넉하게 한다. 소나무가 많아 솔산, 소흘산으로 부르다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봉화산이라 불린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보를 알리던 봉수는 서울의 목멱산까지 4시간이면 통신이 되었다한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중이다. 여기서 봉화를 올린다 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봉수대 대신 150여년 느티나무와 산불 감시초소가 우뚝 서서 그저 정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곳은 새해 해맞이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나도 몇 해 동안 해맞이를 하러 오르던 산이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태양을 향해 시루떡을 중심으로 고사 상을 차려놓고 모두 한해 평안을 기원을 했다. 정상에 모닥불을 피우고 해맞이 나온 이들에게 가래떡을 구워주기도 했다.

동쪽 방향을 바라보니 진천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멀리 두타산도 어렴풋이 보인다. 몸을 돌리니 잣고개 길이 구불구불 실선처럼 펼쳐있고 그 길 너머로 416m 문안산이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다. 정상의 군사 시설까지 맑게 바라다 보인다. 학교 다닐 때 보았던 문안산은 미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산꼭대기 높게 레이더가 돌았었다. 예로부터 문안산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풍채 좋은 노 시인은 산맥과 강줄기의 흐름을 들어 생거진천이 예사롭지 않은 땅임을 든다. 잣고개를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한 봉화산과 문안산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던 전투도 짚어 주신다. 피로 물들었던 6·25 격전지 잣고개는 오랜 세월이 흘러 평온을 찾았지만 노 시인에게는 늘 안타깝고 그리운 고개였던가 보다.

문안산, 봉화산 구름 낀 사이로/ 가르마 같은 고개/ 내 어릴 적 그 언제나 넘을까/ 그리던 고개 / 그가 노래한 '잣고개' 시 일부이다.

수도사단장 김석원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1950년 7월 6일부터 5일간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했던 작전경과가 '6·25 전사자 유해발굴기념 표지판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 전투에는 진천중학교 학생 100여명도 참가를 했다. 하여 1961년 6월 25일 진천중학교에서 충혼위령비를 세워 기리던 것을 1978년 잣고개에 동상과 격전지탑을 건립하여 추모하게 된 것이다.

하산 길은 반대쪽인 대흥사 방향으로 잡았다. 오르는 길보다 다소 완만한 노선이기 때문에 흔히 등산은 대흥사 방향으로 오르는 경우가 많다. 문득 아이들 어렸을 때 가끔씩 가족이 봉화산을 등반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첩을 열어보니 1995년도 날짜가 사진에 찍혀 있다. 대흥사 방향으로 올라 잣고개 삼림욕장 방향으로 내려왔다. 그 당시에는 산 아래 계곡에 가재가 많았다. 돌멩이를 들춰보면 알밴 가재들이 기겁을 하며 우왕좌왕 돌 속으로 숨어들고, 아이들은 찾아내며 노느라 해가는 줄 몰랐다. 도시락 싸간 그릇에 한 움큼 잡아들고 와 찌개에 넣어 끓이면 빨갛게 익은 가재가 별미였다.

계곡에서 가재잡고 놀던 시절이 아득하다. 그 때만해도 백곡천 개울에서 아이들은 멱 감고 나는 한쪽에서 올갱이를 잡았다. 냇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코펠에 밥하고, 찌개 끓이고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사라져 가는 풍경이다. 잊지 못한 추억, 그리움이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동물을 숙주로 살아가던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속을 뚫고 들어와 난리다. 예전에서 꿈도 못 꾸던 녀석들이 인간 세상을 휘저으며 의기양양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잠시 쉼을 갖고자 찾아든 곳이 자연이다. 인간이 생태계 본연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았다면 오늘 날 저들이 이리 날뛰지는 않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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