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가락…받쳐주고 울려주니 완성된 '현의 노래'
25현 개량 가야금 제작 등 국악기 현대화 몰두
'가야금 무드조명' 정부조달문화상품 공모전 '대상'

윤중기 악기장이 자신이 만든 가야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안성수
윤중기 악기장이 자신이 만든 가야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안성수

[중부매일 안성수 기자] 청주시 낭성에서 '율곡 국악기'를 운영하고 있는 윤중기 악기장은 청주에서 20여 년 간 우리 전통 국악기를 생산해온 업계 장인이다. 오랜 시간동안 국악기 제작에 청춘을 바친 윤 악기장은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지역 내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자체 제작한 '가야금 무드 조명'이 정부조달문화상품 공모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 편집자

"국악은 어렵다는 인식이 많아서 현대인들에게 다소 소외받고 있어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인들에게 맞게끔 국악기 개량, 문화상품 개발로 국악을 보다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윤 악기장은 어린이 맞춤형 가야금, 가야금 블루투스 스피커 제작 등 국악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왔다. 이 중 하나인 가야금 무드조명은 지난해 조달청 주최로 열린 제7회 정부조달문화상품 공모전에 출품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출품작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윤 악기장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정부조달문화상품의 세계화를 위해 치러진 2019국회특별기획전에 소개돼 율곡국악기를 널리 알리기도 했다. 올해 예정돼 있던 중국 전시전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현악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있듯이 국악에도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국악도 많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무겁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요. 어떻게 하면 국악이 현대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리속에서 가득 차 있어요."

윤중기 악기장이 25현 개량가야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성수
윤중기 악기장이 25현 개량가야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성수

윤 악기장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25현 개량 가야금이다. 전통가야금인 산조가야금은 12줄로 5음계 밖에 낼 수 없다. 타령이나 아리랑 같은 산조가락을 뽐낼 수는 있으나 현재 유행하는 음악을 다루기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에 개량한 25현 가야금은 현대음악을 다루기에 손색이 없다. 이 범용성을 인정받아 최근 25현 개량가야금과 오케스트라 콜라보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야금은 울림통과 밑판, 줄(현), 안족 등으로 구성된다. 소리를 내는 상판인 울림통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 오동나무 속을 파내 만든다. 가야금의 뒷면인 밑판은 단단한 밤나무로 만든다.

오동나무는 소리를 전달하는 성질이 있어 우리 국악기 재료로 쓰기 으뜸인 나무다. 가야금 재료로는 양지에서 자란 것보다는 춥고 척박한 땅에서 풍파를 맞으며 자란 것이 최고의 재료다. 재질이 단단하고 좀이 슬지 않아 음색이 곱게 나온다.

밑판인 밤나무는 단단한 성질로 울림통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시 위로 올려보내준다.

상판인 오동나무 만큼 밑판인 밤나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 윤 악기장은 밤 율(栗)자를 써 '율곡국악기'란 이름을 짓게 됐다.

윤중기 악기장이 가야금을 만들고 있다. / 안성수
윤중기 악기장이 가야금을 만들고 있다. / 안성수

"좋은 오동나무는 대패질 몇 번만 해보면 알아요. 대패 소리부터 다릅니다. 나무결도 반듯하지 않고 멋져요. 좋은 재료만 보면 기분이 참 좋아요. 더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매번 벅찹니다. 가구는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제작을 하잖아요. 그러나 악기는 디자인과 그에 맞는 '소리'까지 신경을 써야해 정말 어려워요. 매번 제작을 하고 있지만 쉽다고 느꼈던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아무리 이뻐도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악기 제작은 실패한 거니까요."

윤중기 악기장의 고향은 괴산군 칠성면이다. 국악기 제작 입문은 1999년이다. 당시 윤 악기장은 군대를 다녀온 뒤 당시 예술의 전당 지하에 있던 선프라자에서 주방 일을 배우다가 지인의 권유로 국악기 제작에 빠져들게 됐다.

"그 땐 무엇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게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죠. 사실 어릴때부터 음악은 좋아했어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저절로 관심이 갔죠. 당시 일터가 예술의 전당에 있어 종종 음악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 영향도 없지 않았던거 같아요.

"일하던 중 아는 지인의 형이 가야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듣게 됐어요. 가야금을 만든다니 신기했어요. 소리가 나는 전통 국악기를 만든다는 일에 호기심이 먼저 생겼죠. 궁금했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당시에는 어렸고 그래서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한 번 배워볼까 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6개월동안 악기는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고 허드렛일만 했어요. 지문이 다 닿을 정도로 혹독하게 일했죠."

그만둘까 생각하던 차에 당시 선생님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악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노력하는 모습과 끈기를 눈여겨 본 것이다.

윤중기 악기장이 25현 개량가야금을 조율하고 있다. / 안성수
윤중기 악기장이 25현 개량가야금을 조율하고 있다. / 안성수

"눈으로 오랫동안 봐왔으니 한번 해보자고 권유하셨죠.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처음 만든 악기의 소리는 그 어떤 명품 악기보다는 아름답게 들렸어요. 제가 만든 첫 작품이었으니까요."

자신이 만든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것. 윤 악기장이 자신의 업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입문해 18년간 가야금을 만들고 지난 2016년 자신의 이름을 건 율곡 국악기를 열게 됐다. 5년이 된 지금 자리잡아 지역 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명감.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국악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지만 전통을 계속 이어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을 고수하되 현대화에 맞게 개량하고 개선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제 악기를 사용한 학생이 중앙대를 합격했어요. 뿌듯했습니다. 이 삶이 다할 때 까지 전통 국악기를 만들고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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