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15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후보도, 공약도, 정책도 모른 채 투표해야 하는 깜깜이 선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선거 당일에도 국민 개개인의 참정권보다 코로나19 예방 수칙과 팬데믹의 파장이 더 무겁게 작용할 지 모른다.

선거가 촉박해지면서 심판대에 오를 정당과 출마자들의 움직임이 더 분주해지고 있지만 표심(票心)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관심을 갖기에는 바닥에 깔린 정치불신이 심하고, 현실적으로 감염병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후폭풍의 크기가 너무 크다.

선거판 주변이 이렇다보니 출마자들도 애가 탄다. 현역을 비롯해 이미 여러차례 출마했던 정치인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신인급 출마자들로서는 앞이 깜깜할 지경이다. 거대 정당 등의 공천을 받은 이들은 당에 기대어 명함이라도 내밀지만 이 또한 예전같지 않다.

결국 이번 선거는 이미 가진 것이 많은 기득권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조직·명성 등 개인적인 것이든, 당 공천장 같은 공적인 것이든 미리 재단된 것들로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는 얘기다. 이는 자칫 앞으로의 선거일정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더 부추기는 일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유권자와의 대면접촉이 제한되는 현실에서 출마자들을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마저 줄어들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능력과 공약, 정치 철학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정책 토론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직접적인 선거운동이 어렵다면 간접적으로 유권자에게 후보자를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거꾸로 가고 있다. 예년에 진행됐던 정책토론회들도 상당수 무산되는 쪽으로 선거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다. 이러다 보면 선거 홍보물 몇장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깜깜이 선거의 결정판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선거가 이처럼 깜깜이의 극단으로 내몰리는 까닭은 간단하다. 지금의 형세가 유리하다고 보는 후보자들이 이를 기피하는 것이다. '부자 몸조심'만 하면 당선이 눈앞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토론회 거부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알 권리를 외면한다는 비난과 비판 따위는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이다.

변명거리도 있다. 정책·인물에 대한 평가보다는 상대방 말 실수 등 트집잡기와 인신공격이 넘쳐난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시하는 본래의 기능을 무시한 궤변일 뿐이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일 의무가 있다. 그래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진다. 더구나 심판대에 오른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야 다르지만 유권자들에게 내보일 기회만큼은 같아야 한다. 선택을 위해 필요한 정도는 후보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선거운동에 일분일초가 아쉬워 참석이 어렵다면 합동토론회를 하면 된다. 혹시나 표 떨어질 상황을 걱정해 유권자의 평가를 피한다면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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