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오송도서관 사서

2015년 온 국민을 걱정스럽게 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의 종식 선언 즈음에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메르스로 인해 국내에 38명의 사망자도 발생했고, 치사율이 유례없이 높아 많은 국민들이 한 달 이상 불안감을 안고 생활했다. 실시간 관련뉴스가 전해지고, 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확산될 당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사람을 얼마나 위축시킬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5년 후, 우리는 또 다시 바이러스 공포와 맞닥뜨려졌다. 처음에는 중국 우한지역에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픽픽 쓰러진다는 얘기를 듣고 믿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확진자가 국내에서도 발생하면서 심각성을 인지했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은 중지됐고, 세계보건기구도 바이러스 감염 상태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했다.

그 여파는 마스크 대란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높아졌다. 길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니 2013년에 개봉한 영화 '감기'가 생각난다. 영화는 호흡기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치사율 100%의 유례없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발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감염병 창궐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극한의 공포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 혹은 인간적인 상황을 그려낸 재난영화였다. 도시를 집어 삼킨 바이러스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그려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려진 인간의 모습은 메르스 당시에도 현실에서 나타났다. 확진자를 돌보는 의료진 자녀의 학교 등교를 막고, 방역의 최전방에서 진료하고 치료하고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낙인을 찍었다. 특히 그들의 자녀를 왕따 시키는 것은 참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우리 가족의 일이라면 나 역시도 이기적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에 한 현직 간호사는 '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주고 서있는 두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세요' 라는 편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생각하게 된다.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과 컨트롤타워가 작동을 하고, 이미 퍼진 전염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난보다는 조금 더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 기부문화와 마스크를 모아서 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모습, 가족과 생이별하며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이익보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기업, 대구로 향하는 구급차의 행렬까지 따뜻한 온정이 이어지면서 시민의식이 많이 성숙되었음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 이타심을 잃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 19가 종식되더라도 그 공포의 기억을 잊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 또 바이러스가 부지불식간에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위기 대응을 잘 기억해뒀으면 한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더불어 우리가 예측할 수 없었던 감염증은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도 깨닫게 해주었다. 출근길 근처 대형병원 입구에 드라이브스루를 운영하는 방진복을 입은 의료진이 보이고, 밤낮없이 고생하는 보건소 직원들과도 만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을까 싶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