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영국의 속담에는 "지혜는 들음으로써 생기고, 후회는 말함으로써 생긴다."라며 경청의 지혜를 이야기 하고 있고, 전혀 문화권이 다른 이슬람 속담에도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 있다한다.

우리 조상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면서 이쁘게 말하기를 장려하기는 하였으나,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을 보면, 문화나 시대를 아울러 침묵하며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분별력 있는 행동으로 통하는 것인 것 같다.

어쩌면 침묵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이 나라 저 나라 속담을 인용할 필요도 없을 것도 같다. 남을 평할 때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비난은 있지만 너무 많이 듣는다는 비난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주로 말을 하는 직업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변호사에게만 유독 가장 필요한 덕목이 말하는 재주인가 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변호사로 생존하려면 법에 관한 해박한 지식,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 로펌운영을 위한 비즈니스 감각, 의뢰인의 신뢰를 받을만한 외형 등 많은 덕목이 필요할 것이다. 변호사에게는 들은 이야기를 침묵할 법적 의무가 있을 뿐만 하니라 침묵을 유지하면서 듣는 능력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의뢰인을 만나 그를 위해 일을 하려면 당연히 의뢰인으로부터 재판이나 자문에 필요한 기초 사실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야한다. 어떤 상담의 경우는 필자가 그냥 조용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내 안정을 찾고 고맙다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들어주는 것이 갖는 효과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자문을 위한 상담에서 뿐만 아니라 말싸움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재판에서도 침묵하면서 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분노에 찬 상대방의 공격에 우리 역시 정신줄 놓고 하고 싶은 말만 뱉어 놓으면 재판은 산으로 간다. 결국 도대체 왜 소송을 하고 있는지 서로 잊을 만큼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별 의미없는 판결문을 받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형사소송에서 침묵의 가치는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침묵하지 않아 생긴 불리한 증거는 고스란히 말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법은 말의 폐해와 침묵의 가치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먼저 알려주도록 아예 법으로 정해 놓았다. 다들 상식으로 알고 있는 '미란다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수사기관은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체포할 때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고, 또한 그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여야 한다. 무죄의 증거나 선처를 바라는 진술은 언제라도 제출할 수 있으니 굳이 체포 당시 말을 해서 해를 입지 말라는 것이다.

필자는 침묵하면서 하루 종일 의뢰인들의 속사정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털어 놓는 이야기들은 동화같이 아름답지는 않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의 진실성, 살아온 인생까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변호사 짓(?) 오래하면 상황판단에 대하여 반쯤 귀신이 된다고들 하는데 이는 변호사 개인이 특별해서 생긴 특이한 능력이 아니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발생한 일종의 "진화"라 할 수 있겠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침묵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침묵은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고 웅변은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가장 효과적인 방역은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 한다. 이참에 타인과 말을 아끼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의 나와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 이후의 지구에는 육체적으로는 코로나19 면역력을 갖추고 내면적으로는 성숙하게 진화한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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