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르반테스가 소설 '돈키호테'에서 남긴 명언이다. 3천 년간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던 대제국의 유적이 남아있는 이탈리아에 가면 로마제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수도교, 돌로 포장한 로마식 도로, 서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로마법, 효율적인 군사 체계등은 로마를 당시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체계적인 복지시스템을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해 빈민을 구제한 선진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는 늘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퇴보하기도 한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나라 이탈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 갑작스런 위기와 재앙이 발생했을 때 그 나라의 역량과 수준이 드러난다.

선진국 그룹을 G7이라고 부른다. 정치체제, 경제구조, 국민의 수준에서 글로벌 표준이 된 선도국들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등 선진 7개 국가를 지칭한다. 우월한 국력과 첨단기술력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왔다. 이런 G7이 코로나바이러스 한방에 비틀거리고 있다. 유럽의 누적사망자는 중국의 2배에 달한다. 기습적인 대재난에 처한 G7은 혼란 그 자체다. 국경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무역으로 부국이 된 나라들이 지금은 잔뜩 겁을 먹은 채 국경을 봉쇄하고 있다. 거리는 적막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며 아시아인을 적대시하는 인종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 수준이 이 정도인가 개탄스러울 정도다.

특히 이탈리아는 사망자가 4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시신을 실은 군용트럭 행렬을 찍은 외신사진은 괴질이 도는 중세의 암흑시대를 보는 듯하다. 일부지역의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대부분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독일과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선진국의 대처능력도 의심스럽다. 미국도 확진자가 급증해 트럼프행정부가 초비상이 걸렸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지구촌을 혼란과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똑같은 피해를 당하진 않는다. 형편없는 대응능력을 보인 국가들도 있지만 국가지도자의 냉철한 리더십과 전문가를 앞세운 신속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한 나라들도 있다.

독일과 대만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치명률이 0.4%에 불과하다. 이탈리아(9.3%), 이란(7.8%)뿐 아니라 한국(1.2%)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확진자들이 젊기도 하지만 초기부터 검사를 적극 실시하고 우수한 의료인프라도 효과를 발휘했다. 유능한 정부 덕이다. 그런데도 메르겔 독일총리는 자만하지 않았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건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희생과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대만도 인구 대비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확진자와 사망자가 적다. 정부의 위기대응 리더십이 돋보였다. 중국인 입국 차단 등 신속한 국경 관리, 정치 입김 배제한 질병관리체계 일원화, 의료인·과학자 등 현장 전문가 의견 중시 등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철벽 방어했다.

한국은 어떤가. 역시 방역모범국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독일·대만과 다르다. 우수한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 중국 우한바이러스가 창궐하자마자 진단키트를 개발한 기업의 기민한 대처, 사재기를 하지 않고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해외언론을 놀라게 했다. 반면 정부 대처는 무능했다. 전문가의 권고를 무시한 정치적인 결정으로 사태를 확대시키거나 아마추어같은 마스크대책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면서도 낮 뜨거운 자화자찬으로 '의료진과 시민들의 헌신을 도적질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전염병의 전파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괴질이 퍼지면 각국은 국경을 봉쇄해 감염을 막으려 하지만 질병은 어떻게든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와 감염자를 만들고,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류를 괴롭힌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이를 차단하려면 선진적 의료기술뿐 아니라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 해야 하는 지도자의 투명한 리더십과 고도의 행정력이 필수다.

코로나19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재앙이 종식되면 진정한 선진국이 어느 나라인지 판가름 난다. 한국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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