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주방 창가에 한 뼘 정도의 돈 나뭇가지를 물에 담가 놓은 지 석 달이 지났다. 지인의 사무실에 들를 때면 잎이 싱그러운 나무로 눈길이 자주 갔다. 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빛이 들지 않는 곳에 있는데도 윤기가 흘렀고 튼실하게 자랐다.

돈 나무라고 했다. 이름처럼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말에 휘어진 가지 하나를 잘랐다. 속설처럼 돈을 벌게 해준다면 부자가 안 된 사람은 없겠지만, 가슴에 닿는 믿음 하나는 있었다. 키우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된다는 의미도 설레게 했다. 가지를 물에 담가놓으면 뿌리가 내린다고 하니 기다리는 재미도 느껴보고 싶었다.

아끼는 컵에 돈 나무를 담갔다. 주방 창가에 놓고 자주 바라볼 생각이다. 반짝이는 초록 잎으로 주위가 밝아졌다. 설거지할 때나 음식을 만들다가 쳐다보면 싱그러운 잎은 스산한 겨울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희망도 생겼다. 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잎은 반짝이며 살아 있음을 알렸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코로나19가 심각해졌다. 개학이 연기되었다. 준비하고 계획 세웠던 것들은 느슨해졌고 생활 리듬도 깨졌다. 새 학기를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에는 코로나19도 두렵지 않았는데, 개학 연기로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고, 만나자는 연락도 없는 닫힌 공간에서 아무것도 집중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방송사마다 코로나19을 특집으로 다뤘다. 암울하고 무섭고 답답했다.

식물을 기르는 것도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한다. 식물의 녹색 잎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우울증에도 도움이 되며 공기정화 작용도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나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콩나물을 길러보기로 했다.

주문한 콩나물 콩을 기다리는 동안 쥐눈이 콩으로 먼저 시작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며 콩을 불리고 싹이 트기까지는 수월했다. 그러나 뿌리가 생기면서부터 빠른 성장과 함께 잔뿌리도 무성해졌다. 물주기가 잘못되었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니 통일성이 없었다.

어린 시절 방 한쪽에 놓인 커다란 콩나물시루는 귀찮은 존재였다. 놀이를 할 때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숙제처럼 물도 줘야 했다. 그러나 바가지 가득 흩뿌리듯 물을 주면 콩나물 사이사이 지나는 물소리는 듣기 좋았다. 빗소리 같았다. 콩나물 하나하나가 기운차게 일어서는 소리로 들렸다. 면 보자기를 덮으며 살짝 만져보면 봉긋하게 느껴지던 콩나물의 힘. 나직하게 떨어지는 마지막 물방울 소리의 여운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추억 속 콩나물시루를 샀다. 콩나물 콩도 준비했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시루 크기보다 콩이 부족했는지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퍼지면서 잔뿌리가 먼저 나왔다.

세 번째 도전에도 먹기 좋은 콩나물로 기르지 못했다. 뿌리가 나오고 어느 정도 자라면 속에서부터 콩이 무르고 썩었다. 잔뿌리도 빨리 생겼다. 강렬한 뿌리의 힘이 느껴진다. 먹거리로 보면 질기고 억세다. 품질 좋은 콩나물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생명으로 보면 강인하고 힘차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아름답고 대견하다.

콩나물 뿌리를 다듬으며 실패한 원인을 찾아본다. 특징과 습성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의욕이 먼저 앞섰다. 기다리는 동안 욕심이 먼저 생겼다. 건강한 식자재로 자랑하고 싶은 우쭐함도 있었다. 섣부른 행동에서 온 실패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돈 나무도 변화가 생겼다. 줄기가 으깨지듯 찢어진 사이로 유치乳齒나오듯 뿌리가 살짝 보인다. 뿌리 힘이 자신의 생살을 마구 찢어도 품고 있는 돈 나무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무가 겪는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서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누구든 생명을 자신의 몸 밖으로 내보내는 산고는 위대하고 겸허하다.

콩나물 뿌리도 밭에서 내렸다면 건강한 작물로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내 집에 와서 먹거리는 되지 못했지만 뿌리의 힘은 나에게 새로운 기운을 주었다. 주어진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이 중요하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 근간을 세우고 견디면 코로나19는 두려운 바이러스가 아니다.

돈 나무 뿌리가 자라면서 북쪽으로 있는 주방 창에도 봄기운이 돈다. 사람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요즈음, 돈 나무와 나는 밀접접촉자로 지낸다. 방역 마스크 필요 없음. 손 세정제 없어도 됨. 그래도 나는 안전하다. 뿌리가 보내는 힘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배운다. 가까울수록 좋은 거리, 눈 맞춤 시작이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 약력

▶1996년 '창조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뒤로 걷는 여자', '꼬리로 말하다', '네가 준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금 수혜, 충북수필문학상, 허균문학상 수상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비존재 회원
▶현) 방과후 학교 독서·논술 강사,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강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