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 기획경영부장

현대 유도의 창시자인 가노지고로는 1909년에 아시아 최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취임되었다. 그는 IOC 위원이 된 이후 줄곧 올림픽이 서구에서만 개최된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극동아시아의 개최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1931년부터 도쿄올림픽 유치에 나선 결과, 1936년 독일 베를린 IOC총회에서 1940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IOC로부터 개최지 반납에 대해 요구를 받는다. 이에 대해 가노 위원은 1938년 IOC 카이로 회의에 참석해 IOC위원들을 다시 설득했고 1940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확답을 받는다. 하지만 가노는 카이로 회의를 마치고 요코하마로 향하는 히카와마루호에서 폐렴을 일으켜 일본 도착 2일을 앞두고 78세의 생을 마감한다. 올림픽 유치에 대한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가노의 죽음을 맞이한 일본에서는 올림픽 반납론이 일기 시작했고, 2개월 후 도쿄올림픽은 핀란드 헬싱키로 반납하게 된다. 그러나 이 헬싱키마저도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 후 헬싱키는 1952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도쿄올림픽은 1959년 IOC 뮌헨 총회에서 1940 도쿄올림픽을 지지했던 위원들의 힘을 얻어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 유치와 가노가 창시한 고또칸(講道館) 유도를 올림픽 종목에 채택하게 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어렵게 다시 유치한 도쿄올림픽을 완벽하고 훌륭하게 개최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부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1960년 로마올림픽에는 1백여명의 연구진과 정보수집가들을 파견해 각 종목별 경기부터 모든 올림픽 행사 전반을 면밀히 조사하며 완벽한 올림픽 준비하는데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제적인 정세가 순탄치 않았다.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아시안게임에 문제가 생겼다. 개최지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과 대만을 배제하자 IOC에서는 이 아시안게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은 IOC와 올림픽에 대항하는 대회인 가네포(GANEFO: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를 사회주의 신흥 독립국을 중심으로 만들어 1963년에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핵심 국가들은 IOC로부터 1년 뒤 도쿄올림픽에 출전권을 박달 당하게 되면서 결국 인도네시아, 북한, 중국 등이 출전하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도쿄올림픽 개최년인 1964년에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관여가 많아지면서 연일 미국내 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고, 소련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축출되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했으며, 영국은 해럴드 윌슨이 새로운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미국도 린든 존슨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심지어 중국은 올림픽 기간중이던 1964년 10월 16일에 핵실험을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도쿄올림픽 관계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1964년 도쿄올림픽은 서구문화권에 일본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정지 궤도 위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올림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였고, 컬러TV에 대응하였으며, 신칸센이라는 시속 200km의 고속철도를 선보이는 기술적 발전을 얼리는 올림픽이 되었다.

두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도쿄올림픽은 올해 또다시 개최될 예정이었다. 준비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도쿄지사에 대해 IOC가 부담을 느끼며 중재했을 만큼 이번 올림픽은 일본의 중대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대회마저도 대회가 임박해지면서 방사능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우려를 표했고,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년 연기가 되는 사태에 직면하면서 1940년과 1964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IOC는 지난 2주간 비공개 회의로 IOC위원, 국제연맹(IFs), 그리고 각국의 NOC위원장들과의 논의를 하는 등 긴박하게 대회개최여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일본 내부에서도 부정적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일부 국가들의 보이콧 움직임은 일본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결국 2020도쿄올림픽은 연기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일본은 수많은 계약에 의한 처리문제와 1년간 경기장과 선수촌의 유지와 관리, 그리고 대회 재개최를 위한 경비 등 약 7조원 정도의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하지만 스포츠가 승부보다는 선수들의 건강과 인류의 행복을 우선시 하다는 점에서 올림픽 1년 연기는 가장 무난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의 경험으로 상업화와 막대한 개최 예산 문제를 안고 있는 올림픽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국제스포츠계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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