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지나온 세대는 언제나 '요즘 사람들, 요즘 아이들은?'하며 세대 차이를 말한다. 그래서 구닥다리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연애시절 우리는 빨간 우체통과 우체부 아저씨의 발품을 통해 최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서로의 소식과 안부를 묻는 러브레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온라인 SNS(Social Network Services)상에서 초 단위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시조의 정취에 흠뻑 빠져있던 문학도 시절. 누가 들어도 낯설지 않은 나와 우리민족이 그리는 가상의 고향 청산(靑山). 무던히도 비가 많이 왔던 그 해 여름. '당신을 초대합니다' 연두빛 포스터와 현수막이 나의 여름을 유혹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산비탈에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사다리꼴 모양으로 붙어있는 정겹고 고즈넉한 곳. 면 단위 마을에 천여 명 이상 대학생들이 모이니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다.

초록으로 뒤덮인 산과 정갈한 밭. 넓다란 침대가 펼쳐진 듯 바람에 출렁이는 논. 낮에는 구름 기둥이 미루나무에 아래 그늘을 만들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는 겨드랑이 속까지 시원한 바람을. 밤에는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기타치며 노래하고, 달빛은 젊은이들의 꿈을 환히 비추어 주었다.

캠프파이어 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파트너는 우리들 모임 선배로 그 얼굴과 이름 정도는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 날 처음 일대일 만남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그는 고등학교 과학교사였고, 충청도와 전라도 대학생 여름수련회 장소를 청산으로 유치한 숨은 공로자였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재미없고 싫어하던 과목이 과학·수학이었던 내게, 자신은 음악과 문학을 좋아한다며 개인적인 소개를 하는 그의 진중함이 좋았다.

선후배로 순수한 만남이 있는 동안 난 그에게 여고시절 짝사랑 하던 선생님의 체취를 느끼며 시나브로 마음이 향하고 있던 즈음, 진하고도 짤막한 프로포즈를 받았다. "주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바라고 절제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그와 주고받은 러브레터는 수많은 사랑의 메시지로 오고 갔다. 눈을 뜨면 아침인사를 시작으로 공부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하루 세 통 이상 편지를 써 봉투에 번호를 붙여 보낸 날도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약혼을 했고, 오랜 기다림 후 부활절주간에 결혼. 우리가 처음 만난 청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SNS(Social Network Services)가 일상의 통신수단이 된 작금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최첨단을 향해 가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와 마이크로 블로그, 24시간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공감의 방법은 거스를 수 없는 문명의 이기(利器)임에 틀림없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편지를 쓰며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답장을 쓰며 사랑을 주고받던 아날로그 러브레터 세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초고속 온라인 세계를 헉헉거리며 따라가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다.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간직한 두툼한 연애편지 속에 들어있는 추억과 청춘 그 옛날 그 정서를 그리워하면서. 오늘 이 순간을 사랑하며 영원처럼 살고 싶다. 느린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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