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최근들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어딜 가든 사람이 많지 않아 공간의 범위가 넓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다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고, 나 역시 마스크를 쓰다 보니, 세수하지 않고 다녀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어 야외활동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반면에 마스크 안으로 얼굴을 숨긴 사람들은 마치 인터넷의 주인 없는 댓글처럼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와글거린다. 바깥에서도 인터넷처럼 익명성이 유지되는 사회가 되었다. 거기다가 사회는 사람들을 향해 집에 머무르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그래서, 서로 얼굴을 내비치고, 손을 잡는 인사도 사라졌다. 모두 최소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사람과의 간격에서 더 큰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로 부지런 떨어야 할 시간에 속옷 바람으로 대충 의자에 걸터앉아 모니터 앞에 털썩 앉는다. 이맘때쯤이면 공기가 좋지 않아 항상 창을 닫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다른 듯하다. 잠시 창을 열었더니 숨쉬기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집에서 오래 앉아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상 위 집기 위치가 달라졌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의자 등받이의 기울기가 달라졌다.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행동반경 안에 자주 쓰는 물건이 모두 배치되었다. 그리고 잘 쓰지 않았던 물건을 다시 꺼내 쓰다 보니 제대로 된 게 없어 새 걸로 다시 주문했다. 평소 시선이 잘 가지 않은 공간에 낯선 것들이 눈에 들어와 그제야 치운다. 공간은 일과 휴식이 마구 뒤섞여 더욱 빽빽해졌다. 바깥의 공간에 간격이 생겼다면 내부 공간의 간격은 좁아져 밀도가 높아졌다.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해야 할 집은 이제 누구도 더는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나를 더욱 가두게 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바깥이 궁금해졌다.

이것은 우습게도 공포가 만들어낸 공간의 모습이다. 사실 의외로 평화롭고 느긋하다. 애완동물은 집주인이 종일 집에 있으니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신난 듯해 보인다. 반면에 사람은 집에 갇혀 있으니 움직임은 느려지고 살은 자꾸 불어난다. 그 와중에 점심시간이 되어 연신 배달 앱을 뒤적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커피 한 잔이 절실해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다가 문득 사람이 많은 카페에 앉아 커피잔을 달그락거리던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이 났다. 어색하고 생소하다. 사람과의 가까운 간격이 그리워졌다는 말이다.

간격은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 붙어서도 안 된다. 뉴스에서 발코니에 서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등장했다. 서로의 가까운 간격이 그리웠던걸까? 사람들은 집안 깊숙한 곳에서 나와 빛이 있는 집의 끝으로 향했다.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최전선인 발코니로 말이다. 각자 집에서 악기가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연주했다. 그렇게 사람과 서로 간격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 평 남짓의 발코니를 만든 이유는 세상에 나와 고개를 내밀고 눈길이 허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라고 1미터 정도 바깥으로 내민 배려의 건축이다. 요즘 들어 발코니가 달라보인다. 세상을 향해 힘들게 손을 뻗어 외로움을 달래려는 사람의 손과 같아 보이는 건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보이는 일종의 환상일 것이다. 그 작은 공간에서 사람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발코니는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도 만나게 하지 않았던가.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특색없이 맨맨한 아파트에 사는 나는 이런 발코니가 더욱 필요한 요즘이다. 단순히 창문을 열어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바깥으로 한 걸음 정도 나올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런 마음으로 애초에 발코니가 만들어졌나 보다. 건축은 별 게 없다. 이런 배려로 만들어지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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