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이른 아침이다.

'깨똑' 소리에 전화기의 창을 연다. 창이 열리는 동시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엎드려 배를 바닥에 붙인 채 팔 다리를 치켜들어 파닥이며 제 엄마를 바라보고 꺄륵꺄륵 소리내며 웃고 있다. 그 웃음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제 엄마가 무어라고 지껄이자 더욱 신이 난 아이가 한 톤을 더 높여 깔깔댄다. 반달눈이며 코끝을 찡긋거리며 소리 내어 웃는 모습에 나는 그만 자지러진다. 생후 6개월 쯤 된 외손자 지후이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커튼을 연다. 베란다 봄꽃들이 아기의 웃음소리마냥 한껏 생기로 들떠 있다. 집안을 둘러보니 햇살이 가득 차 있다. 온통 눈부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외손자가 태어난 후 달라진 아침 풍경이다. 습관상 늦은 밤, 잠이 들어 아침이면 억지로 일어나 꾸물거리며 하루를 시작했던 것과는 영 다르다. 오늘은 아이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아기의 웃음소리 영상으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한다.

달라진 건 나뿐만이 아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친구가 좋고 집보다는 밖이 더 좋은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의 귀가시간이 부쩍 빨라졌다. 아기 목욕시키고 잠을 재우기 전 잠깐 하는 동영상 통화시간을 놓치면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기다리던 전화가 오지 않으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다. 드디어 전화가 걸려오고 화면 속 아기가 벙긋 웃어주기라도 하면 입이 귀에 가 걸린다. 아이가 알아듣든, 그렇지 않든 우리 부부는 동영상 속 아기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야'를 외치며 화면 속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딸아이가 결혼을 했다. 미혼으로서의 자유로움을 즐기다 결혼하기를 바랐던 나에게 딸은 혼자서 느끼는 즐거움이 하나라면 둘이 느끼는 행복은 두 배가 될게 아니냐며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요즘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도 자기 사랑이 더 소중한 젊은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딸의 선택이 한편 대견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망자보다 출생아 비율이 더 적은 초고령 사회, 인구 절벽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만삭의 몸으로 다니는 임산부를 보는 일이 신기할 정도이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결혼 자체를 꺼리거나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 갖기를 주저하기 때문인 같다. 물론 그들이 육아문제나 주택문제 등의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골목마다 왁자지껄 떠들며 뛰어놀던 아이들의 힘이 오늘의 산업화도 최첨단 IT 강국도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세상은 끔찍하다. 아이들의 생기 있는 웃음소리 대신 조글조글한 얼굴에 이빨 빠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히멀건 미소만이 세상에 가득 찬다면….

아이들의 웃음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아기 지후가 나와 남편을 변화 시키듯이.

요즘 젊은이들이 조금은 여유를 가졌으면 싶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후 결혼하겠다거나, 또는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할 것이고, 아이의 탄생에 돈으로 맛 볼 수 없는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좀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면 어떤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고 사랑하는 사람과 힘을 합치고 그들의 2세를 탄생시키고, 그렇게 탄생한 아가들의 웃음이 해바라기처럼 걸린 세상, 아이들의 웃음만이 우리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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