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미세먼지도 코로나19에 밀려났나 보다. 파란 하늘에 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두문불출하다 무심천 벚꽃 향연을 고향 가는 자동차 안에서 보니 어느새 꽃비가 되어 내린다. 허허로운 마음을 대로변에 조성된 화단의 형형색색 봄꽃들이 달래준다.

매년 한식 때는 사형제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친목 도모와 우애를 다졌었다. 올해는 사초까지 해야 하나 우리 가족만 갔다. 남편과 아들의 도움으로 사초를 끝내고 나니 조상님께서 편안히 영면하실 것 같아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갈 때는 부산한 마음에 차창 밖 풍경을 보지 못했다. 올 때 보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야가 황홀하다. 시선 두는 곳마다 한 폭의 수채화다. 갤러리에 있는 듯 눈이 호사한다. 코로나19로 입학이 늦어진 일곱 살 손자도 아파트에 갇혀있다 오랜만의 외출에 신바람이 났다.

선산의 솔향, 꽃향기, 봄 내음을 지절대던 손자가 몸을 비비 틀더니 심심하다며 학교는 언제 가느냐고 자못 진지한 표정 짓는다. 유치원 잘 다니다가 갑자기 등원 중지하고 집에서만 맴돌고 있으니 에너지 방출할 곳이 없어 아이나 가족 모두가 힘들다. 어른들도 갑갑증이 나는데 천둥벌거숭이들이야 말해 무엇 하리. 지금껏 당연시되던 2월 졸업식과 3월 입학식은 물론 아무렇지 않게 즐기던 일상이 마비되고 나서야 소중한 걸 뼈저리게 느낀다.

4월 20일 온라인 입학을 한다고 구구절절 설명해도 동문서답이다. 나쁜 병원균이 물러가면 바로 학교에 갈 것이라며, 애교심도 키우고 학교 가는 길도 알려주고 싶어 손잡고 나섰다. 손자가 입학할 학교는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호를 따 지난해 3월 개교한 단재초등학교이다.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는 무심천변 방서지구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교문에 들어섰다.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경이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다는 소리는 입소문으로 들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기가 어렵다는데 단재초등학교는 모두를 충족시켜주지 않나 싶다. 일 년밖에 안 된 신설 학교인데도 유치원 포함 44학급에 일천여 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로 자리매김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학교처럼 느껴진다.

아름답고 시설까지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낡고 허름해 창고인지 건물인지도 모르는 교실에서 공부하던 내 어린 시절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보는듯해 감개무량했다.

60여 년 전 허약한 몸으로 5Km를 타박타박 걸어 학교에 가면서도 무에 그리 좋은지 입이 함박만 해져 깡충깡충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초등학교 입학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꿈과 희망에 부풀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에 사는 손자는 어떨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꿈과 이상은 같지 않을까. 아무리 챗봇 등 첨단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일 테니.

코로나19 때문에 현관에서 출입통제를 한다. 교실은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만 보는데도 내가 학교에 근무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선진화된 교실과 특별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창의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 같은 초현대식 과학실과 시청각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해 줄 것 같은 글마루 단재도서관, 건강을 책임질 급식실 등 어찌나 정갈하고 깨끗한지 나도 달뜨고 손자도 하회탈이 되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방긋거리는 아이들만 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텅 비어 있어 냉기가 도는 교실에 하루빨리 초록빛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차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실 앞을 지나는데 TV에서 감명 깊게 들은 '모두 다 꽃이야'란 국악 동요 가사가 예쁜 꽃과 나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꽃처럼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노랫말에 꽃과 나비가 함께 하니 상서로운 향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교직원들 모두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것 같은 따뜻한 마음도 보인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 열정, 안목이 돋보이는 환경정리이지 싶다.

요즘 아이들을 적게 낳다 보니 누구나 귀한 자식이고 보물들이다. 보물을 빛나는 보석으로 키우기 위해 학교에 거는 기대도 그만큼 클 것이다. 단재초등학교는 예사롭지 않은 교명처럼 즐거운 배움으로 희망이 넘치는 교실,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초석이 될 듯싶다.

하지만, 학교의 노력만으로 되겠는가. 각자의 재능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학부모도 학교를 믿고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소통과 협력으로 행복한 동행을 해야지.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루빨리 종식되어 온 국민이 마음 놓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단재 어린이들 모두 건강하게 자라서 따뜻한 가슴으로 꿈을 싣고 하늘 높이 날았으면 한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가슴을 열고 태양을 품되 긍정과 열정과 지혜와 올곧은 품성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가는 일원, 아침의 찬란함과 같이 가정과 학교의 사랑 속에서 고운 심성을 두루 갖춘 사람, '모두 다 꽃이야'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사랑받은 만큼 사랑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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