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속살거리는 바람결이 만져질 듯 산뜻하다. 상큼함이 느껴지는 뒷산에 시선이 머물다보니 시골 살 적 산에 오르던 때가 생각난다.

물 오른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면서 홑잎나물, 다래순, 참취, 원추리나물을 뜯다보면 어느 순간 솜털 보송보송한 고사리가 눈에 띈다. 반가움에 얼른 꺾어서 앞치마에 담고 발걸음 돌려보면 눈 맞추는 고사리 새순. 갓 자랐을 때는 양수 속에서 태아가 주먹 쥐고 있는 모습 같고, 조금 핀 것은 아기가 무엇을 움켜쥐려고 살짝 쥔 모양에 흰 솜털로 덮여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손을 고사리 손이라고 하였던가.

풀섶이나 작은 나무 밑에서 땅을 뚫고 여기저기 삐죽 솟아난 앙증스런 모습들, 고사리 밑동을 손으로 잡고 힘을 주면 툭 소리를 내며 꺾인다. 뚝뚝 다리 부러지는 고사리의 신음이 많아질수록 그럭저럭 이던 산자락은 황금 산이라도 된 양 반갑다.

사실 고사리는 여유를 가지고 봐야 눈에 띈다. 겅중겅중 오르면서 보면 눈에 띄지 않다가도, 쉬었다 가려고 앉아서 찬찬히 보면 보인다. 허리 꼿꼿이 펴고 둘러보면 저만치서 손짓하는 고사리. 곧장 그곳으로 가야지 가다가 눈에 띄는 고사리를 먼저 꺾고 가보면 원했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먼저 있던 자리로 와서 봐야 눈에 띈다.

인생이라는 길에서도 목표를 정했으면 목적지를 향해서 가야지, 가다가 다른 것이 탐난다고 기웃거리다 보면 자기가 바라던 것과 다른 길로 접어들어 있음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중에라도 원래 있던 자리로 와서 다시가면 늦더라도 목표는 달성할 수 있다. 언제 다시 갈까 싶은 마음에 계속 샛길에 연연하다보면 원하는 인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한 개라도 더 꺾으려고 고사리를 따라 쉴 새 없이 산을 헤집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속살대는 봄바람에 앞가슴 풀어 헤쳐 땀방울을 식혀본다. 가슴 짓누르던 상념의 끈도 느슨하게 풀고 묵직해진 고사리더미도 내려놓는다. 앞치마에 담겨있는 고사리는 단순히 무게로 값을 매길 수는 없다. 고사리 한 움큼에는 수많은 땀이 담겨있어서이다.

발목에 차던 풀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수풀이 된다. 그만큼 뱀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고사리를 꺾는다. 구름 낀 날이었다. 동네아낙들은 전날까지 내린 비에 일이 밀려 모두 논으로 나가고 혼자 산을 올랐는데 산자락에서 뭔가 쑥 지나간다. 뱀이었다. 온 몸의 세포들이 곤두서고 머리는 멍했지만 그날따라 다녀간 이가 없는지 고사리 천지였다.

발길 돌리는 데로 보이는 고사리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눅눅한 산을 헤매는데 낮은 나무위에서 몸을 돌돌 말고 머리를 쳐들고 있는 독사를 발견했다. 순간 도망가야 하는데 발이 땅에 붙어버렸다. 덜덜 떨고 있다가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고사리를 꺾어 온 날이면 눈에서는 고사리가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부터는 똬리를 틀고 있는 뱀만 아른거렸다. 징징 울면서 산을 내려온 나를 동네아낙들은 덜 생겼다면서 웃지만 그날부터 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난 일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산다. 고사리에 대한 집착을 뱀이 끊게 해 주었듯이 뭔가 큰 것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는 한 자리에서 열 번 이상 채취할 수 있다. 내어주고 또 내어주는 고사리처럼 내 할 일 바지런히 하리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