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정월보름이다. 청량한 하늘이 문을 열었다. 나는 보름달만 보면 조선의 여인들을 생각한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그렇게도 힘이 든다는 흡월정을 하면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에 비하면 나는 애태우지 않고 물 흐르듯 여인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오늘은 참 오랜만에 월출을 보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정월보름달이 뒷산 능선에 올라 한숨 몰아 쉴 때쯤에 친정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다섯 오빠들과 장난치며 선머슴아 같다고 늘 걱정하시던 어머니시다. "자야 니도 인자 여자구나, 뻘때추니로 자유롭던 어린아가 아이다. 매사 몸가짐 조심하고 마음가짐 또한 반듯해야 하는기라."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정월 보름께 첫 달거리 하는 나를 앉혀놓고 어머니는 참 많은 말씀을 하셨다. 밤이 이슥하도록 하시던 말씀 중에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뜻을 알아차린 내용도 있다. 달과 여인, 그리고 바다의 연관성을 당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지 않은 동해 쪽에서 자란 나는 '한사리'가 무언지 '조금'이 무언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달은 우리 여인과 아주 밀접한 연이 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깊은 뜻은 이해를 못하면서도 옛날이야기처럼 담고 있었던 게다.

달이 숨 쉬는 대로 바닷물도 숨을 쉬고 우리 여인들의 몸도 그에 맞춰서 숨을 쉰다고 하신 그 말씀이, 나와는 다른 세상, 마치 전설이나 동화 같았다. 아마 달거리와 관계 되는 이야기는 무조건 쑥스러워서 듣기 거북하니까 거부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문학에 발을 내밀고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 보니 어린 내가 당연히 이해를 못했던 내용들이 재미있는 관심사가 되었다.

"동반달 서반달 뜰 때가 조금인기라."

서쪽하늘에서 눈썹달을 볼 수 있는 음력 초여드레와 동쪽하늘에 눈썹달이 뜨는 스무사흘에는 바닷물도 줄어들어 수면이 가장 낮은 '조금'이라는 뜻이었다. 반대로 달이 꽉 차서 온달이 되거나 아예 깜깜한 그믐에는 바다도 배부르게 부풀어 꽉 차는 '한사리'가 된다. 그믐에는 달이 한 쪼가리도 없는 데 왜 바닷물은 꽉 차느냐는 철부지의 질문에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그믐에는 땅 밑에서 온달로 뜬단다" 하셨다.

초승달이 점점 차서 온달이 되어 이 땅에 달빛으로 쏟아 붓고 조금 씩 조금씩 제 몸이 줄어드는 것처럼 세상여인들도 몸 안의 보배인 깨끗한 혈이 보름달처럼 차면 쏟아내니 월경(月經)이라 한단다. 이 정혈(淨血)을 소중히 간직하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차고 줄고 높아지고 낮아지는 조화로 상응하는 우주 섭리에서 볼 때 바다를 품고 있는 이 땅을 자궁이라 표현한 시인의 뜻을 알 듯하다. 설에는 질어야 좋고 보름에는 맑아야 좋다고 전해지는 조상의 속뜻 또한 떠오르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기 위한 바람인가 싶다. 태양의 위용 아버지의 엄중함보다는 모성을 지닌 달을 향해 은밀하게 고요히 마음 모아 소원을 빌면 온화한 품으로 보듬고 들어주리라는 믿음이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차이다. 가슴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모성 본능은 세상 어떤 힘으로도 억제할 수 없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제법 쌀쌀하지만 뒤꼍 향나무 그림자 꼭대기에 서있는 내게 보름달이 한 볼떼기 미소를 보낸다. 재바르게 받아 나도 답례로 물고 있던 볼웃음을 보냈다. 올해는 소원이 이루어지려나보다. 그냥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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