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고생했네. 어쩌겠나,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거지. 책임이야 자네에게도 있지만 최후의 패장은 후보 아닌가. 아쉬움도 남지 않을 만큼 참패해 어떤 기대나 토사구팽에서 서로 자유로우니 그걸로 위안 삼게나. 미련 없이 허허롭게 떠날 수 있으니 그런대로 다행 아닌가.

변명은 말게나. 서로 불편할 뿐이니. 가슴 펴고 손 휘휘 저어가며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라 하고 싶네, 그거 쉬운 일 아니지. 따져보니 두 해에 세 번꼴로 나라에 큰 선거가 있더라고. 그러니 자네는 지금까지 항상 현역이었던 셈이지.

연거푸 네 번 상대에게 졌더라고. 유권자들을 뭔가 단단히 서운하게 했던 모양이야. 불쌍해서라도 한 번은 손들어줄만 한데 거푸 네 번이라니….

꽃들이 피어나는 포근한 봄날이야, 지난 건 잊고 한동안 푹 쉬게. 내 보기에는 지는 것도 괜찮아.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백이·숙제 흉내라도 조금 내보라고.

아쉬운 건 너무 차이 나게 졌다는 게지. 그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걸세. 자네 책임도 없다 할 순 없지. 사람이 언제 조심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가, 힘들어 다른 이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 때야. 긴장이 풀리고 실수를 하는 건 여유가 생긴 때지. 야당의 도움이 필요치 않으면 여당은 모든 걸 자기들 원하는 대로, 혼자 뛰려 하겠지.

잘 나가던 이들 망가지는 게 오만과 독선이라더군. 스스로 그런 걸 원하는 이들은 없지, 모두가 최고로 대해주니 어느 순간 익숙해져 타성에 빠지고, 나중에는 그렇게 해주지 않는 이들이 서운한 거지. 등산을 생각해 봐. 정상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내려가는 일만 남는 거지. 역사에 보면 나라들이 거대한 건축을 하곤 몰락하더라고. 주변에 견제세력은 없고 아부만 들리지, 국가 재정엔 무리가 가고 노동력 징발로 서민들 불만이 쌓여가니 온전할 리 있나. 솔로몬은 거대한 궁전을 짓고, 진시황은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쌓고 몰락했지.

지는 게 이기는 거란 아리송한 말 알지? 맞는 말 같더라고.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하잖아. 늘 조심한다는 게야. 힘없고 내세울 것, 자랑할 것 없으니 늘 낮은 자세로 서로 의지하고 섬기며 사는 게지. 길게 보면 그런 삶이 바르게 사는 것 아닐까.

'제대로, 멋있게, 보란 듯이' 같은 말들이 눌려왔던 시절의 한풀이처럼 들리지 않아? 그게 인격과 교양이 갖추어지지 않은 졸부들이 벌이는 모습과 겹친단 말이지. 남이 없는 걸 자신만 소유하고 있다는 게 추락의 요인이야. 왜 예전에 읽었던 신화에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루스에게 새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주어 미궁을 탈출하게 하잖아. 남에게 없는 날개로 태양 가까이 날아보려다 바다로 떨어져 죽지. 또 비슷한 게 아버지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를 몰다 제우스의 벼락에 죽는 파에톤 얘기야. 처음엔 얼마나 자랑스럽고 신이 났을까? 성공과 환희, 추락과 애통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이 어쩌면 등을 맞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최한식 수필가

자네, 아예 이번에 그 세계에서 발을 빼는 건 어떤가. 연거푸 네 번을 졌다는 건, 실력자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 이미 자리 잡았다는 거야. 이 참에 순한 산짐승 찾아들고 구름 머무는 데서 감자 심고 옥수수 기르며 자연과 벗 삼아 살다보면 마음과 몸 가벼워져 학 타고 다닐지 누가 아나. 자, 이제 일어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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