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이은상의 시가 마음에 들어 홍난파가 작곡한 노래 '봄처녀'는 봄이 오면 흥얼거려지는 곡이다.

노래 속의 새봄은 처녀같이 우아하게 표현되어 아름다운 여운을 주었는데 올해 우리의 봄은 인류에게 잊히지 못할 상처가 새겨진 계절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상처를 알 바 없는 철딱서니 없는 꽃들은 여기저기서 팡팡 그 화려함을 자랑하듯 피어나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지친 사람들은 봄의 화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활짝 피어 흩날리는 화사한 봄의 향연에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착잡한 이 시기에 꽃들조차 없었다면 얼마나 더 삭막하고 우울했을지….

봄에 인간을 유혹하며 위로하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기지개 켜는 봄바람에 실리듯 쑥쑥 올라오는 봄나물도 꽃들 못지않게 우리를 부른다. 김장김치의 신맛이 지겨워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에 파랗게 새싹을 내민 봄나물이야말로 새로운 입맛을 돋우게 하는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커피 한잔의 여유로운 시간. 봄볕이 머문 화단 한편에 소복하게 자란 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해마다 이맘때쯤 마을 어귀에서 캐온 달래를 다듬고 화단에 던져두었더니 어느새 자리를 잡고 올라온 것이다. 달래는 된장국에 넣어 먹어도 별미지만 새콤달콤 고추장에 무쳐내면 더 향긋한 봄맛을 즐길 수 있어 생각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한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증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도 달래고, 저녁 찬 거리라도 마련할 겸 호미를 챙겨 들녘으로 나갔다. 달래, 냉이, 쑥. 원추리, 지칭개 등 사방에 널려진 나물들이 마치 5일장에 온 듯하다. 넉넉히 수북하게 펼쳐진 봄나물을 구경하고 향기도 맡으며 어느 것부터 사다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듯한 들녘의 재래시장이랄까.

마트에 가면 깨끗이 다듬어진 야채가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어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땅의 첫 기운을 받은 봄나물만 한 영양을 지닌 것은 없다.

호미와 나의 작은 노동으로 가득 채운 봄나물을 바라보니 뿌듯한 마음에 부자가 된 것 같다. 냉이는 데쳐서 무쳐 먹으면 독특한 자연의 단맛과 향이 입안에 머문다. 쌉싸름한 고들빼기와 씀바귀도 민들레와 함께 새콤 달콤 무쳐먹으면 잃었던 입맛을 돋우니 고맙기 그지없다.

나물마다 자신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과 맛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지칭개를 참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냉이나 쑥국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지칭개국이다. 많은 사람들이 냉이는 잘 알고 있지만 지칭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지칭개는 특유의 쓴맛을 우려내고 콩가루를 입혀 작은 불로 은근하게 푹 끓여내면 콩가루의 구수함과 심심하지 않은 식감이 매력적인 것이 지칭개국이다. 조심해야 할 부분은 끓일 때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 푹 끓이지 않은 상태에서 뚜껑을 열면 쓴맛이 나서 먹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깨끗하게 뜯은 쑥에 쌀가루를 입혀 쑥버무리로 봄의 별미를 완성시켜 접시에 담았다. 달래무침. 냉이무침. 씀바귀 무침도 접시에 담겨 저녁 밥상 위에 앉았다. 뒤란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온 부추를 베어 부추전도 올리니, 오늘은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새봄과 건배를 해야겠다.

우리의 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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