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구룡산에는 짐승들이 들락날락하는 길이 있고,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들고양이가 들락거리는 길이 있다. 방목된 닭은 해질녘이 되면 저절로 닭장에 들어간다. 연어는 하천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 뒤 알을 낳기 위해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되돌아온다. 사람에게도 익숙한 것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에게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만큼 익숙한 것은 없다. 누구나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이끌리고 편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족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려는 심리를 '귀향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삶에서 귀향증후군 현상을 접하는 일은 흔하다. 부부싸움을 할 때 상대방을 비꼬며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한다. 자식을 훈육할 때도 "하는 짓이 지아비를 빼닮아가지고"라며 혀를 찬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귀향증후군의 백미다. 어릴 때 굳어져 익숙해진 나쁜 행동과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다수다. 나쁜 버릇을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곱씹게 된다. 마음이 미성숙하면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고 걷는 것만큼 삶이 버거워진다.

나도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과묵하고 살갑지가 않으셨다. 식구들끼리는 데면데면했고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큼 친밀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의 폭은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내가 오십칠년 간 아버지와 나눈 말수도 말이 많은 누군가와 한 달간 나눈 말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아들과 딸아이와 편안하게 마주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여전히 서툴고 목마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했다. 학창시절 모처럼 고향집에 가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빠져나오기 바빴다. 이런 습관은 부모님과 있을 때 내 마음이 불편해서 나온 행동임을 최근 심리학을 접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나는 부모님에게 따뜻한 포옹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정서적인 친밀감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서먹서먹했다. 내가 아들과 딸에게 해주었던 스킨십도 청소년이 될 무렵 귀향증후군이 발현되어 멈춰졌다. 귀향증후군은 한 세대의 가치관과 행동을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게 만든다.

지난해부터 나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아들과 딸에게 스킨십을 다시 시작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서른의 아들과 스물일곱이 된 딸을 만나고 헤어질 때 마다 애정을 담아 포옹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익숙해져 편안해졌고 아이들도 좋아한다. 매일 열다섯 번 정도 포옹을 해주면 마음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아들과 딸이 마음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결혼한 후에도 포옹을 이어가고 싶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은 어린 시절 가족과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살면서 겪는 불행의 반복성은 오랜 동안 무의식적으로 유지되는 행동 패턴이다.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경험이 지금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의 불행한 가족관계를 재현하려는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불건강한 가족관계를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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